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지난 4일 SNS를 통해 ‘브리핑에 없는 대통령 이야기’라는 글을 올렸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코로나19 백신 3상 임상시험을 위한 대조 백신 4천 개를 확보하는 데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선 뒷얘기를 소개했다.
아스트라제네카 CEO와 면담과 서신을 통해 애써 노력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무슨 얘기인지 난해한 글이었다.
임상시험은 주로 가짜 약(위약) 대조방식으로 이뤄졌다. 수만 명을 모집해 개발 약과 가짜 약을 나눠 먹게 한 뒤 효과를 입증하는 방식이다.
수많은 시간과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반면 대조 백신 비교방식의 임상시험은 훨씬 수월하다.
여기서 문제는 기존 해외업체들이 대조할 백신을 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약하면 코로나 백신 국산 개발을 위해 문 대통령이 물밑에서 뛰었다는 걸 국민이 알아 달라는 의도의 글이었다.
이 글이 뜬금없이 올라온 진짜 배경은 따로 있었다.
문 대통령은 바로 사흘 전 풍산개 새끼 7마리와 노는 사진을 공개하며, SNS에 한가한 글을 올려 거센 비난을 받았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보낸 풍산개 선물 ‘곰이’가 낳은 강아지다.
이날은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에 있는 보건의료노조 파업을 앞두고 국무총리,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나서 막판 밤샘 협상이 진행되던 때라 더 그랬다.
청와대는 “이해를 구한다”라는 취지의 입장을 서둘러 밝혀야만 했다.
이런 법석을 떤 일련의 청와대 소동 속에는 더 큰 문제가 있다.
대기업인 SK바이오사이언스와 경쟁하는 중소제약 전문업체들도 많다.
유바이오로직스, 셀리드, 진원생명과학, 제넥신 등은 기술력 하나로 재벌기업인 SK와 힘겹게 싸우고 있다.
이들도 임상2상을 마치기 전 3상을 위해 뛰고 있었다. 대조 백신을 구하기 위해 자금과 노력을 쏟아 붓고 있었다.
힘에 겨웠던 제넥신은 해외로 눈을 돌려 인도네시아 파트너사와 기존의 가짜 약 대조방식으로 3상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들도 정부 차원에서 도와주기를 목말라 했지만 청와대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힘없는 중소제약업체의 입장에서 보면 박근혜 대통령 때 삼성 이재용 부회장 커넥션과
문 대통령 때 SK 최태원 회장 협조가 뭐가 다른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을 거다.
대통령이 재벌 민원을 들어주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했다고 자랑할 수 있을까?
당장 주식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이미 SK바이오사이언스는 3개월 새 주식이 따블로 폭등해 ‘최태원 재벌 일가’의 호주머니만 두둑해졌다.
이런 걸 정경유착이라고 하지 않나? 과거 박정희와 정주영 커넥션, 박정희와 이병철 커넥션, 박근혜와 이재용 커넥션과 무엇이 다를까?
죽창정신을 강조하는 문 대통령으로서는 국산 백신 개발을 서두르고 싶었던 충정이었으리라 믿고 싶다.
지금은 백신 확보가 관건이다. 아무리 빨라도 내년 말께나 가능하다는 백신 개발은 국가적 우선순위도 아니다.
더이상 정부에 방역 협조 못 하겠다고 한밤중에 아우성치며 시위하는 자영업자들을 보면 더 급해진다.
청와대의 이런 행태를 바라보는 국민과 중소기업들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
대한민국에서는 진보정권으로 바뀌어도 재벌만 돈 벌고 여전히 떵떵거리고 산다.
약자 우선, 사람 먼저라는 문 대통령의 통치철학과 동떨어진 결과에 더 의아스럽기만 하다.
다른 나라도 국가의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기 위한 대통령의 경제외교는 다 있다.
하지만 여기엔 명확한 기준이 있다. 국민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투자 사안에 대해서만 대통령이 발 벗고 뛴다.
트럼프든 바이든이든 모든 대통령이 한국의 대기업에 규제를 풀어 도와주고, 세금을 깎아주며, 정상외교 때 박수쳐주는 이유는 미국의 일자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어땠을까?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대통령과 사적 이해관계가 있거나,
참모들이 자기편이라며 데리고 가는 이상한 기업들만 방문했다고 지적해도 딱히 할 말은 없을 거다.
최로엡 loep@scorep.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