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간의 대혼란 셋째날
2000년3월26일 일요일.
화창하게 맑은 일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서울 계동의 현대그룹 본사 풍경은 날씨와는 대조적으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현대건설 소속 경비원들이 출입자를 엄격 하게 막았기 때문이다. 외부인은 물론 본사 직원들까지 철저하게 출입을 통제했다.
한 경비원의 말이다.
“현대건설 총무과에서 새벽부터 외부인 출입을 막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현대건설 총무과 직원들도 현장에 나와 진두지휘했다. 마치 건물 안에서 무슨 사고가 일어난 것처럼 보였다.
오전 9시.
“건물에 남아 있는 잔여 인력은 모두 나가세요.”
현대그룹 본사 건물의 스피커에서는 이런 안내방송이 수없이 반복됐다. 일부 직원들이 잔무와 개인적인 일을 보기 위해 휴일에도 불구하고 출근했으나 정문에서 막는 바람에 그냥 돌아갔다. 평소 이 건물은 공휴일에도 앞뒷문이 모두 개방됐었다. 건물 지하에는 예식장도 있었기 때문이다.
정몽헌 회장 측 말이다.
“오래 전부터 준비한 보안시스템 작업을 위해 출입을 통제하는 것이다. 삼성그룹도 이런 작업을 자주하는 걸로 알고 있다.”
오전 11시 5분.
정몽구 회장이 에쿠스 리무진 차를 타고 현대그룹 본사에 도착 했다. 몽구 회장 차는 통과시켰다. 기자가 몽구 회장에게 달려가 “지금 소감이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에이-”하며 두 손을 크게 내저었다. 재차 “아버님인 정주영 명예회장이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 까”라고 묻자 “다음에 얘기……”라고 했다. 그는 이날도 아직까지 술이 덜 깬듯 약간 비틀거렸다.
몽구 회장이 집무실로 올라간 3분 뒤인 오전 11시 8분.
또 다른 에쿠스 차 한 대가 정문을 들어오려 했다. 경비원이 차안을 들여다 본 뒤 봉쇄했던 정문을 열었다. 그런데 에쿠스 차는 현관 쪽으로 다가오다가 갑자기 한바퀴 돌아서 다시 되돌아나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기자가 뛰어가 차창 안을 들여다봤 다. 뜻밖에도 차안에는 박세용 회장이 얼굴을 가리고 앉아있었다. 그는 현관에 기자가 서 있자 서둘러 되돌아가려 했던 것이다.
이건 또 무슨일일까?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몽구 회장차가 들어온 뒤 뒤따라 왕당파라고 자처한 사실상 정몽헌 회장 사람으로 분류됐던 박세용 회장차가 왜 들어왔을까.
[나는박수받을줄알았다93]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