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그간 운영된 비대면진료를 오는 6월 1일부터 시범사업 형태로 이어가겠다고 예고했으나,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 등 의약계와 플랫폼을 운영해온 업계에서 저마다 다른 이유로 반대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는 시범사업 방침을 ‘재진환자 위주로 제한적 범위 안에서 비대면진료를 운영한다’로 정한 상태로 의약계는 이에 동의하나 소아·청소년 환자로 확대돼서는 안 되고 약 배송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플랫폼 업계는 정부의 이런 방침이 업계를 향한 사망선고라며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고 있다. 업체 중 한 곳은 오는 27일을 끝으로 사업을 종료하기로 했다.
플랫폼 업체들로 구성된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복지부는 실현 불가능한 시범사업안을 내놔 전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시범사업은 사실상 비대면진료를 금지하는 반(反)비대면진료”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대상 환자가 제한적인 시범사업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관련 발언과 정면 충돌하며 몇십년 전부터 해온 시범사업과 무엇이 다르고 규제개혁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총 18개 업체로 구성된 원산협은 지난 24일 이러한 내용의 ‘대통령께 드리는 호소문’을 용산 대통령실에 전하며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남성 비대면 진료, 약 배송 사업을 하는 플랫폼 업체 썰즈는 27일을 끝으로 사업을 그만하기로 했다. 썰즈는 “27일까지는 정상적으로 가능하니 진료가 필요하면 금주 중 진료 신청을 완료해달라”고 당부했다.
원산협은 초진, 약 배송이 제외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으로 썰즈와 같은 결정을 할 기업이 줄을 이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초진 환자를 비롯해 비대면진료의 전면 제도화를 바라는 플랫폼 업계와 달리 의료계는 정부의 시범사업이 더 보수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사협회는 지난 19일 입장문을 내 소아·청소년 초진은 향후 허용돼선 안 되며 비대면진료 플랫폼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대한이비인후과의사회, 대한내과의사회 등 진료과목별 의사단체도 각자 성명서를 통해 안전성 등을 이유로 시범사업에 불만을 표했다.
이비인후과의사회는 “이번 시범사업안에 우려를 표하며, 원점 재검토하기를 권고한다.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도서벽지 등에 제한적으로 시행돼야 한다. 졸속 추진해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의협은 지난 23일 복지부가 의약단체들과 진행한 제38차 보건의료발전협의체 회의에서도 이런 입장을 전했다.
대한약사회는 의약품 대면 수령 원칙을 꾸준히 주장해 와 복지부는 시범사업안에 이를 반영했다. 다만 진료는 비대면으로 하고 약 수령을 대면으로 하는 게 국민 불편을 초래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재진환자와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이라는 복지부와 의협 합의를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병원급 기관들의 단체인 대한병원협회는 병원도 전향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19일에는 의협이 ‘5개 의약단체가 참여한 공동입장문’을 배포했으나 병원협회와 대한한의사협회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의 명의가 도용당했다”고 지적하며 명의 참여에 빠지는 일도 있었다.
의약계와 플랫폼 업계간 신경전, 여론전을 두고 시민단체나 환자단체는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운영에 국민, 환자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다.
40여개 단체가 참여하는 무상의료운동본부는 복지부에 과잉의료와 약물 쇼핑을 이유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중단을 촉구했다.
또한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26일 “이해 관계가 아니라 꼭 필요한 환자의 의료서비스 접근권 확대 관점에서 신속하게 환자와 의사간 비대면진료를 허용하는 법적 근거를 신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각계 요구가 다양한 가운데 복지부는 “안전한 시범사업을 위해 의견을 계속 수렴하고 있다. 시범사업은 물론 의료법 개정을 통해서도 제도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오는 30일 건강보험 정책 최고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내용을 보고하고 의·약사에게 지급해야 할 관련 수가를 심의, 의결받아 6월부터 추진할 예정이다.
차재희 기자(jhcha@scorep.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