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콧줄을 단 80대 중환자가 침대에 실려 은행을 방문한 일이 논란이 된 가운데 감사원이 은행별 내부 규정을 정비해 금융소비자가 겪는 불편을 개선하라고 지적했다. 특히 병원비를 지급하기 위해 예금을 찾으러 거동이 어려운 환자가 직접 은행을 방문하는 일이 없도록 예금 인출방식을 점검하라고 촉구했다.
감사원은 2일 “국민이 금융거래 과정에서 잘못된 제도·관행으로 불편을 겪는 사례가 없는지 ‘금융소비자 보호 실태’를 모니터링한 결과 이러한 개선 과제를 도출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은행권과 협의해 병원비 인출 불편 및 계좌 신규개설의 과잉규제 등을 해소할 방침이다.
감사원이 5대 은행을 대상으로 거동불편 환자의 예금 인출방식을 점검한 결과, 대부분 예금주가 의식이 없으면 가족 등 대리인의 신청을 받아 환자 상태를 확인한 후 은행이 병원비를 병원 계좌에 직접 이체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일부 은행은 이체대상에서 요양병원은 제외하거나 긴급한 수술비에 한해 이체를 하는 등 은행별로 지급범위가 제각각이었다.
감사원의 지적에 따라 금감원은 지난달 은행권과 간담회를 가지고 전 은행권의 상담원 고객 응대 체크리스트 등을 정비했다. 이에 따라 예금주의 의식이 없는 경우 예금주 가족은 병원비를 직접 이체할 수 있도록 했다. 예금주가 의식이 있을 땐 대리인을 선임한 후 대리인이 은행 방문·인출 등을 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앞서 지난 1월 서울에 사는 80대 노인 A씨도 ‘수술비 외 병원비를 찾을 땐 예금주 본인이 직접 방문해야 한다’는 은행 규정으로 구급차에 실려 콧줄을 단 채 은행을 방문한 적 있다. 당시 A씨가 내야 할 병원비는 500만원이 넘었지만 이 가운데 수술비 항목은 없었다.
A씨 가족은 “아버지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라 병원에선 아버지의 외출이 불가하다고 했다”면서 “하지만 은행 직원은 수술비 이외 병원비는 지급할 수 없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와야 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 듣고 금융감독원과 협의를 거쳐 제도 개선을 하게 됐다”면서 “앞으로도 국민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안들에 대해 세심히 살펴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신규계좌를 만들 때 겪는 과잉규제도 해소될 전망이다. 현재 금융업계는 대포통장에 활용될 것을 우려해 입출금통장을 만들 때 재직증명서, 근로계약서 등 다수의 증빙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실제 금융감독원 대포통장 근절 대책에 따르면 은행은 단기간에 2개 이상의 계좌를 개설한 자 등 일부 고위험군에 한해서만 자체적 판단에 따라 증빙자료를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명확한 기준이 없어 대부분 고객에게 전체 증빙자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감사원은 이에 대해서도 “규제범위·강도가 확대되면서 많은 국민이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며 “불합리한 관행은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김주용 기자(jykim@scorep.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