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을 연결해주는 컨테이너선은 화재가 거의 없다. 선체는 뛰어난 자동소화 시스템이 필수로 갖춰져 있고, 나머지 화물칸은 인화 물질을 싣지 않는 한 불이 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기차를 싣고 가는 컨테이너선에서는 도깨비불 같은 화재 사고가 빈발해 의아해하고 있다. 최근 폭스바겐 자동차 4000대를 싣고 대서양을 건너던 거대한 펠리시티 에이스 컨테이너선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벤틀리, 아우디, 람보르기니, 포르쉐 등을 포함한 전기자동차가 대부분이었다.
한동안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던 소방전문가들은 전기자동차의 리튬이온배터리에서 자연 발생적인 발화가 시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선박사고 전체는 줄고 있는 추세지만 컨테이너선 화재가 증가하는 것은 전기자동차 등의 운송 증가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리튬이온배터리는 노트북, 휴대전화, 전동킥보드, 드론 택시, 전기자동차 등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리튬이온배터리의 화재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는 아직 없다. 하지만 이 배터리는 과충전되는 등 열에 노출되면 화재나 폭발의 위험이 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인 미상’이라고만 밝혔던 이런 화재에 리튬이온배터리의 핵심 구성물 중 하나인 ‘양극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배터리의 용량과 성능을 좌우하는 양극재는 음극재와 분리막, 전해액과 함께 배터리의 4대 소재다.
양극재는 니켈(Ni) 망간(Mn) 코발트(Co) 알루미늄(Al)을 주로 쓴다. 그런데 니켈은 고용량 향상 특성, 망간과 코발트는 안전성 특성, 알루미늄은 출력향상 특성을 각각 가지고 있다. 이들 소재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양극재를 구성한다. 그런데 전기차같이 용량이 큰 배터리는 니켈 함량을 더 높인다. 반면 안전성이 떨어져 열에 노출되면 화재와 폭발의 가능성이 커지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는 전동킥보드나 휴대폰 충전 중 불이 나거나 폭발사고가 나는 원인으로 추정된다. 전동킥보드 충전 중 화재로 서울에서 다세대 주택 화재도, 우즈베크 유학생의 안타까운 사망도 이 같은 이유로 보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1위 업체인 중국의 CALT 제품을 탑재한 푸조EV 차량에 화재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관련 업체들은 통계적으로 100만대 당 1대의 화재 사건이 발생한다며 코로나19의 백신 사고보다 적다고 안전성을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리튬이온배터리로 인한 화재는 진압하기도 복잡해 애를 먹고 있다. 펠리시티 에이스 컨테이너선도 초기 진화 진압 대처를 제대로 못 해 대형 화재로 번졌다.
리튬이온배터리 화재는 B급 화재(유류 화재)로 분류돼 꺼진 듯하다가도 화염이 재발하고, 독성가스인 흰 연기가 계속 분출된다. 리튬이온배터리에 물을 뿌리면 독성가스인 불화수소도 생긴다. 특수 소화기 등 적절한 방법이 없으면 물을 뿌리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의견도 많다.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는 전기차 화재 때 물을 뿌린다면 리튬이온배터리가 완전히 잠길 정도로 1만 리터 이상 쏟아부어야지 찔끔 뿌리면 더 악화한다는 얘기도 있다. 스마트폰 화재 땐 탄산수가 잔뜩 담긴 통에 빠트리라고 권고하기도 한다.
사진=유튜브 캡처
최로엡 loep@scorep.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