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평균 근속 연수가 10년이 넘을 만큼 안정적인 직장으로 여겨졌던 국내 제약사가 임원 20% 감원, 희망퇴직 프로그램(ERP)을 실시한다. 인원 감축은 국내 진출한 다국적 제약사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지만 국내 전통 제약사에서 이런 고강도 직원 감축이 이뤄지는 건 흔한 풍경이 아니다. 경기침체 여파가 국내 제약업계까지 미치며 향후 다른 제약사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일동제약과 지주사 일동홀딩스는 23일 구성원에게 연구비용 효율화, 파이프라인 조기 라이선스 아웃(L/O) 추진, 품목 구조조정, 임직원 ERP 등을 포함한 쇄신안을 공표했다.
핵심은 임직원 수를 줄인다는 것이다. 일동제약과 일동홀딩스의 임원 수를 지금보다 20% 이상 줄이고, 남아 있는 임원들은 급여의 20%를 반납하기로 합의했다. 또 차장 이상 간부급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프로그램(ERP) 신청을 받기로 했다. 현재 일동제약과 일동홀딩스에는 1400여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조직 통합, 인원 재배치 등 합리적인 조직으로 재정비해 효율적인 자원 운영과 매출목표 달성을 이루기 위한 조치”라며 “전반적인 경영 효율화를 위한 방안이지, 인원 감축만을 위한 쇄신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런 일동제약의 결정을 무게감 있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일동제약은 매출 7000억원대로 규모는 중견 제약사에 해당하지만 오랜 업력과 탄탄한 지배구조, 적지 않은 연봉 등으로 제약업계에서 다니기 좋은 직장 중 한 곳으로 여겨졌다.
일동제약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직원 평균 근속 연수는 11.5년으로 나온다. 장기 근속하는 직원이 많다는 의미다. 제약업계 공무원으로 통하는 유한양행의 평균 근속 연수가 12년인데 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급여도 적지 않다. 2021년 직원 평균 연봉은 7300만원대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일동제약은 막 성장하는 제약사는 아니지만 안정적으로 꾸준하게 매출을 이끌고 있는 제약사 중 한 곳”이라며 “근무 강도도 세지 않은데 그에 비해 연봉도 적지 않아 한 번 다니면 쭉 다니는 직원이 많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동제약은 최근 몇 년간 경영 실적이 좋지 않았다. 그동안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이어왔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일동제약은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을 매년 10% 이상을 유지해 왔는데 지난 2021년에는 이 비중을 19.3%까지 늘렸다. 일동제약이 2021년 지출한 연구·개발비는 1251억원이다. 일동제약은 이 개발비를 코로나 치료제 ‘조코바’ 등의 개발에 투입했다. 하지만 조코바는 일본에서 긴급사용 승인을 받은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긴급사용을 받지 못했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정식 품목 허가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일동제약 매출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지난 2021년부터 영업손실을 기록 중이다. 21년 555억원, 22년 73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는데 올 1분기에도 144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10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다국적 제약사에서 구조조정이나 ERP는 흔했지만 국내 제약사의 구조조정은 매우 드문 일”이라며 “경기불황으로 제약바이오업계도 침체되면서 또 다른 구조조정 기업이 나오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차재희 기자(jhcha@scorep.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