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6세기경 에티오피아에서 최초로 발견되었지만 오래지 않아 강대국이었던 사라센제국에 의해 독점되어 진다. 이슬람 국가였던 사라센제국에서의 커피는 국가의 중요한 재원이었으며, 특히 성지순례자들에게 사막을 종단할 때 잠을 깨워주고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효능으로 인해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다.
이때까지 커피는 마시는 음료로서가 아닌 과육(Pulp)과 씨앗(Bean)을 함께 으깨어 음식에 발라 먹거나 약(藥)으로 조제하여 먹는 방식으로 음용되었다. 사라센제국에 이은 오스만투르크에 와서야 커피는 비로소 음료의 형태로 즐겨 마시기 시작하였고 지식인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학 등을 논하는 자리에 반드시 커피와 함께 하기 시작하였다.
16세기의 한 시인은 “거품이 가득한 뜨거운 커피에 한잔을 마시는 지성인만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며 커피에 대한 예찬론을 펴기도 하였다.
이 같은 분위기는 당시 전 유럽국가들을 문화적 융성기에 접어들게하기에 충분했으며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까지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유럽인들을 변화시킨 커피문화
십자군 전쟁과 르네상스를 통해 커피문화가 유럽 사회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는 한편 동인도회사를 출범시킨 네덜란드와 영국의 중요한 해상무역 자원으로 커피가 급부상하게 됨에 따라 유럽전체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도수가 높은 술에 취해 지내던 유럽인들을 깨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즉, 그들로 하여금 생산적인 활동에 몰두하게 하고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커피를 접하게 되는 나라는 상류사회 사람들이나 지식인들로부터 안목이 높고 교양 있는 사람으로 여겨져 국제관계에서도 우호적인 상황의 유지를 가능케하였다.
영국의 커피하우스 유행을 불러일으킨 한 퇴학생
17세기 중반의 영국에서는 커피의 유입이 정식으로 허가되지 않아서 발생한 일화가 있었다.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은 당시 학생들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매일 학교에서 일정량의 포도주를 지급받아 마셨고 학교 주변에도 350여개의 선술집이 있을 만큼 지성인들의 높은 문화적 수준을 유지하는데 술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지만 알코올이 주는 영향으로 인해 커피가 조금씩 그 자리를 대신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정식절차를 통해서는 커피를 접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에게 커피는 그 가치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가는 최고급 음료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크레타섬에서 유학 온 한 학생이 고향에서 보내준 커피콩을 기숙사에서 몰래 끓여 마시다가 발각되어 퇴학을 당하게 되고 이에 반발한 퇴학생의 아버지는 옥스퍼드대학 인근의 상인들에게 커피의 상품성을 알리게 되었고 이는 옥스퍼드대학 인근을 시작으로 영국 전역에 수많은 커피하우스를 열게 만든 시발점이 된다.
글 : 박한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