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용 포도와 식용 포도
포도의 원산지를 일반적으로 중동지방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와인 양조용 포도일 경우를 말하는것일뿐, 우리가 흔히 과일로서 직접 먹는 식용 포도는 대부분 미국에서 온 것이다. 그래서 포도를 유럽 종과 미국 종 두 가지로 나누는데, 하나 더 추가한다면 아시아 지역의 머루까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유럽 종 포도가 한나라 때 실크로드를 통해 아시아에 전달됐지만, 우리나라에서 그 포도가 존재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현재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옛날 우리나라 그림에 등장하는 포도로 추측되는 나무의 열매 역시 유럽에서 건너온 포도인 것인지, 아니면 머루인지 그 구분은 사실상 모호하다.
필록세라로 인한 전염병 유행의 시작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뒤, 유럽인들이 미국 동부에 상륙해보니 이름 모를 수많은 포도가 자생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야생 포도의 천국이었던 것이다. 이들이 이 포도로 와인을 양조해보니, 유럽의 와인과는 맛이 전혀 달라 와인 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그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서 생산되는 포도는 식용으로 사용하고, 와인 양조용 포도는 따로 유럽에서 들여오게된다.
그러나 유럽의 포도는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습하면서도 더운 미국의 동부지방에서 잘 자라지 못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된다. 하지만 미국 포도가 유럽으로 건너가게 되면서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양쪽 대륙으로 묘목이 오가는 과정에서 미국 포도 뿌리에서 기생하는 벌레가 유럽으로 건너 간 것이다.
처음에는 프랑스 남부지역에서 발견됐다가, 점차 보르도를 중심으로 이 벌레가 퍼져 유럽의 포도밭은 쑥대밭이 되며 지금의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한 전염병의 대유행을 뜻하는 팬데믹(Pandemic) 상황에 준하는 에피데믹(Epidemic) 즉 전염병의 국지적 유행 상황과 같은 것이었다.
미국 포도는 수천 년 동안 이 벌레와 같이 지내오면서 이 벌레에 대한 저항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동부에서 자라는 미국 포도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유럽 포도는 저항력이 전혀 없었기에 순식간에 포도밭이 엉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저항력이 없는 유럽의 포도밭은 이 벌레 때문에 20~30년 동안 거의 황폐화 됐지만 해결 방법이 없었다.
필록세라가 바꾼 세계 주류 시장의 판도
‘필록세라(Phylloxera vastatrix)’라고 불리는 이 벌레는 진딧물의 일종이다. 녹황색에 몸길이가 1mm 내외의 난형으로 날개를 가진 것도 있다. 크기가 작기도 하지만, 주로 뿌리에서 자라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게다가 농약이 발달된 때도 아니고, 검역이라는 개념도 희박했던 시기라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유럽의 와인메이커들은 남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르헨티나, 칠레 등의 와인산지로 이동하면서 신세계 와인산업을 발전시키게 된다.
19세기 후반에 필록세라 때문에 유럽의 와인 생산량이 바닥을 밑돌자, 이제까지 천대받았던 맥주가 상류층에서도 빛을 보게 됐고, 와인을 증류시켜 만드는 코냑을 비롯한 브랜디 역시 품귀현상을 보이면서 스코틀랜드 위스키가 브랜디 대용으로 세계적인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명산지의 와인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원산지를 속여서 파는 가짜 명산지 와인이 유행했고, 이를 해결하고자 생긴 것이 원산지명칭표시제도(AOC)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필록세라 사건을 모르면 와인의 역사는 물론, 세계 주류 역사의 중요한 대목을 지나칠 수밖에 없다.
제2의 필록세라를 마주하기 위한 준비
필록세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액의 현상금을 내건 적도 있지만, 쉽게 해결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서야 미국 포도가 필록세라에 저항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국 포도 뿌리에 유럽 포도 가지를 접 붙이기 해 해결할 수 있었다.
미국 포도가 식용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와인용으로 가장 중요한 필록세라에 강한 뿌리를 가지고 있어서 접붙이기 대목용으로 그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다. 그러나 미국 포도라 하더라도 필록세라에 완벽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취약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라 필록세라는 두고두고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글 : 박한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