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완연한 요즘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에너지 관련 업무를 하는 공무원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푸념을 늘어놓는다고 한다. 이는 전력 수요가 유난히 적은 봄철 경부하기(4~5월)와 관련 있다고 하는데 어떤 문제가 있길래 공무원들은 친환경 무탄소 발전의 대표격인 태양광을 바라보며 두통을 호소하는 걸까.
우선 전력 시스템의 특성을 살펴본다. 전력은 발전량이 부족할 때 주로 부각된다.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블랙아웃 가능성은 발전량이 ‘과잉’일 때도 마찬가지로 커진다. 전력 과다 생산 이슈는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에서 두드러진다.
예전부터 봄은 전력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계절로 꼽혔다. 동시에 따뜻한 햇볕 덕에 태양광의 전력 생산량은 많은 계절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탈원전’을 국정과제로 들고 나온 문재인 정부는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기존 26.3%에서 40%로 대폭 상향하겠다”고 선언한 뒤 전국 곳곳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급격히 늘렸다. 봄철 전력 과잉 생산 우려가 확 커진 배경이다.
특히 전국 태양광 설비의 절반가량이 밀집한 제주·호남 지역에서 봄철 전력 과잉 생산에 따른 블랙아웃 가능성이 커졌다. 호남 지역의 태양광 발전 설비 규모는 2019년 3087메가와트(MW)에서 지난해 9106MW로 3년 새 3배가량 급증한 상태이다.
전력거래소는 전력 공급 과잉이 우려되면 발전소에 출력제한을 지시한다. 발전소 가동을 잠시 멈추게 한다는 의미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2018년 15회이던 제주 지역 출력제한 횟수는 지난해 100회 이상으로 크게 늘었다. 출력제한이 잦아지면 발전 사업자는 그만큼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호남에서는 최악의 경우 전남 영광 한빛원전의 발전량을 줄이는 방안까지 거론된다고 한다. 전력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신재생·화력·액화천연가스(LNG) 등의 발전 출력을 차례로 제한하고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원전 가동마저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원전 출력 감발(출력을 낮추는 것)이 자주 이뤄지는 건 아니다. 산업부 관계자는 “연휴·주말 등 전력 수요가 매우 낮고, 맑은 날씨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이용률이 매우 높아 재생에너지·석탄·LNG 등 타(他)전원 감발만으로는 전력 수급 균형을 맞추기 어려울 때 예외적으로 원전 출력 감발 조치를 한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지금은 한빛원전 가동 일시 중단까지 염두에 둘 정도로 예외적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전원주택의 지붕과 마당, 아파트와 빌딩의 외벽·옥상 등에 입주자가 개별적으로 설치하는 태양광 발전 설비도 봄철 전력 수요 하락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라고 한다. 필요한 전력을 자가발전 설비로 직접 얻는 개인이 늘면서 대규모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이 남아도는 일도 잦아졌다는 것이다. 산업부 공무원들 사이에서 “주택 지붕의 태양광 패널만 봐도 머리가 아프다”는 푸념이 나오는 이유이다.
전력 수급 불균형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는 통상 여름·겨울철 전력 피크 시기에만 수립해온 전력 수급 대책을 올해부터는 봄철에도 마련했다.
산업부는 지난 24일 발표한 ‘봄철 전력 수급 특별대책’을 통해 “4월 1일부터 매일 기상 상황과 전력 수요 등을 고려해 호남·경남 지역의 지속운전성능 미개선 태양광 설비를 대상으로 설비 용량 기준 최대 1.05기가와트(GW)까지 출력 제어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정부는 날씨가 맑은 주말·연휴에는 양수 발전소 하부 저수지의 물을 상부로 끌어올려 초과 발전된 전력을 저장하고, 출력 제어가 가능한 바이오 발전 등의 운전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이런 조치에도 전력 공급이 넘쳐난다면 원전 출력도 제한적으로 조정한다. 이호현 산업부 전력정책관은 “태양광 발전의 급격한 증가로 앞으로는 봄철에도 전력 수급 운영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차재희 기자(jhcha@scorep.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