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비둘기파를 보냈는데, 왜 매파라고 난리야?
사상 초유의 주택담보대출 금지라는 ‘코미디 같은 금융시장 혼란’이 벌어졌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가올 대통령 선거 때문에 생긴 ‘정치 코미디’다. 의석수 180석에 자만했던 민주당이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선거에서 참패한 뒤, 문재인 대통령이 ‘죽비로 맞았다’라고 했던 대목을 되짚어봐야 한다. 집토끼 같은 2030 세대와 저소득층 표심이 민주당을 떠난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곧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들을 어떻게든 다시 잡아 올 궁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방안 중 하나가 은성수 금융감독위원장을 갈아치우는 거였다. 암호화폐 강경 발언으로 영혼까지 끌어당겨 투자했던 2030 세대의 원성을 샀기 때문이다.
“암호화폐(가상자산)에 투자한 사람까지 정부가 보호할 수는 없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정무 감각 없는 ‘장관급 금융감독위원장’을 질타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은성수를 자르라는 글이 20만 명을 넘겼다. 대통령 임기 7개월을 앞두고 은성수를 자를 수밖에 없었다. ‘내 편’이라고 생각한 고승범을 신임 금융위원장 자리에 앉혔다. 그런데 국회 인사청문회(27일)도 열리기 전부터 금융시장에선 그의 이름이 럭비공처럼 튀었다. 금융시장이 그를 매파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장의 첫 반응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NH농협은행이 자발적으로 주택담보대출 금지를 선언했다. 우리은행과 SC제일은행이 뒤따랐다. 2030 세대가 이용하는 카카오뱅크도 신용대출한도를 ‘연봉 2배’에서 ‘연봉 수준’으로 제한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 인사청문 요청 사유서를 보면 “온화한 리더십을 보유한 금융전문가”라고 했다. 집권 민주당에 부담을 안 주는 정책을 펼 거라는 인사 평이었다. 신임 금융위원장 후보는 대선 뒤 정권이 바뀌면 사표를 내야 하는 딱한 처지이기도 하다. 시장을 쥐락펴락할 시간도 없다. 그만큼 그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의외라는 얘기다.
물론 눈길 끄는 그의 사전 발언은 있었다.
“지금 금융위원장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임무는 가계부채 관리다.”
가계부채와 전쟁을 예고했다. 가계부채는 전임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부터 시한폭탄이었다. 가계부채가 1300조 원대였던 박 전 대통령 당시 “1500조 원이 넘으면 금융의 둑이 무너진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시한폭탄을 방치했다. 2019년 끝내 가계부채 1500조 원대 시한폭탄이 터지고 둑이 무너졌는데도, 누구도 호미나 삽조차 들고나오지 않았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덮쳐 가계부채는 1805조 원(올 2분기 기준)까지 치솟았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폭등하는 아파트를 사고, ‘빚투’로 암호화폐를 사는 2030 세대로 인해 속수무책이었다. 가계부채 증가속도는 9.4%로 세계 최고다. 미국이 3% 수준임을 빗대면 문재인 정권은 경제를 모르거나, 포기한 거로 봐야 한다.
정권 막판까지 윤석열·최재형처럼 대들지 않을 금융위원장을 임명했다.
정치공학적 표 계산으로 은성수를 사퇴시키는 강수를 썼다. 하지만 시장은 예측불허, 속수무책 상황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33번이나 국회 청문회를 무시하고 장관을 임명한 뚝심(?) 있는 문 대통령은 당연히 고승범 금융위원장에게 임명장을 건네줄 거다. 그 뒤 고 금융위원장이 어디를 바라볼 건지에 따라 금융시장의 혼란은 지금보다 더 급변할 수밖에 없다.
국민만 바라볼 건지, 시장만 바라볼 건지, 대통령만 바라볼 건지, 민주당만 바라볼 건지, 선거서 이길 당만 바라볼 건지…
이젠 영혼 없는 공무원의 시선이 궁금하다.
최로엡 loep@scorep.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