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제국에서부터 커피숍들은 탄생하였다. 이 커피숍들을 ‘카프베(Kaveh)’라고 불렀는데 훗날 프랑스의 커피숍이 카페(Cafe)라고 불리게 된 것이 카프베라는 발음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이곳에서는 많은 사람이 커피를 마시며 만담이나 그림자 연극 등을 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그러나 커피숍이 사람들에게 주었던 가장 큰 매력은 커피가 사교 수단의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었다.
역사가 페체비는 1641년에 지은 역사서를 통해 “카프베는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휴식 할 수 있는 장소”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한 권력자가 자신이 사는 도시에서 모든 커피숍을 폐쇄하고 커피 금지령을 내리자 이에 그 도시에 시민들이 “커피는 우리에게 황금과도 같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엔 가장 고귀하고 관대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저항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카페를 통해 탐구의 대상을 찾다
프랑스의 커피문화는 프랑스 대혁명에서 출발하여 보헤미안 문화로 이어지며 찬란하게 꽃을 피우게 된다. 프랑스 대혁명 때는 파벌마다 특정 카페에 모여 그들의 주장을 전개하였고, 나폴레옹 시대의 탄생과 함께 외무부 장관에 임명된 탈레랑은 “커피는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아름답고, 사랑처럼 달콤하다.”라는 명구를 남기기도 하였다.
또한, 프란체스코 수도회인 카푸친 수도원의 의상에서 영감을 얻은 ‘카푸치노(Cappuccino)’는 카푸친 수도원의 두건 달린 갈색 성직자복의 색상이 카푸치노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커피 메뉴가 되었다.
미술인들 또한 커피와 카페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여 아일랜드의 미술학도였던 조지무어는 “중세의 젊은이는 성배를 찾아 나섰지만,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카페에서 탐구의 대상을 찾는다. 그래서 나는 옥스퍼드나 캠브리지를 가지 않고 카페 누벨아테네를 선택했노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커피숍에서 일과를 시작했던 베토벤
커피는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이탈리아는 교황이 앞장서서 커피에 세례를 주었고, 독일에서는 바흐가 커피 칸타타라는 송가를 작곡하기도 하였으며, 음악과 미술이 발달했던 오스트리아에서는 커피하우스가 제국의 중심이자 문화기관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또한, 커피광이었던 슈베르트는 카페 보그너에서 음악의 구상하였으며,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역시 커피숍에 들르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이후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또 하루를 마무리한다.
글 : 박한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