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함께 진화한 술 와인
와인은 인류와 함께 진화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와인 생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70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간다. 석기시대 음료로 시작한 와인 제조업은 현재 고도의 기술 산업으로 발전했고 전 세계 인구 100명 중 1명이 와인과 관련된 산업에 종사하고 있을 정도로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했다.
이처럼 현대사회에 경제·문화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와인은 언제부터 만들어 지기 시작한 것일까? 와인의 기원에 대한 단서는 고대 그릇 조각에 남아있는 흔적에서도 알 수 있다. BC 35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그릇조각에서 발견된 붉은 반점들은 포도에 함유된 특이성분인 타르타르산(Tartaric Acid)과 성분이 비슷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증거는 중동지역에서 발견된 항아리로 이란에서 출토된 BC 5500년경의 것이며, 이 항아리 조각의 연구를 통해 그때 이미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 모두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포도의 본격적인 재배는 BC 5000년경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부터일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창세기의 내용을 근거로 보면 노아(Noah)가 이때쯤 살았을 것으로 추정 할 수 있으며 대 홍수 이후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했던 최초의 인간 역시 노아였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다. 또한 성서에 노아가 와인을 마시고 술에 취해 벌거벗은 채 돌아다녔다는 기록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고대사회의 사치품 와인
와인을 마시는 문화는 급속도로 퍼져 고대사회 모든 사람들이 즐기는 술이 되었다. 하지만 포도재배는 아무 곳에서나 이루어지지 않았고 설사 힘들게 포도를 재배해 와인을 만들었다 해도 저장기술이나 보관용기가 마땅치 않아서 금방 식초로 변해 버리기 일쑤였다. 이렇게 소량만이 제조 되었던 탓에 와인은 귀족들의 전유물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귀족들은 축제 때 마다 와인을 손님들에게 대접하며 자신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특히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사후세계를 준비할 때에도 와인을 빼놓지 않았다. BC 3150년경 이집트가 와인제조 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통해 70여개의 와인 항아리를 들여와 파라오의 무덤에 함께 묻었다는 기록은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사후세계를 위해 와인을 준비했음을 알 수 있으며, 1922년 하워드카터가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했을 때 수십개의 와인항아리가 별도의 저장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보다 놀라운 사실은 발굴 당시 와인 항아리 마다 ‘고급’, ‘최고급’ 혹은 ‘축제용’, ‘세금용’ 등의 문구가 적혀있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고대세계에서도 사랑받았던 와인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 이상으로 다양하고 폭넓게 사용되던 당대 최고의 사치품이었던 것이다.
와인은 인간과 자연이 만들어낸 합작품
와인은 아주 우연히 발견되었다. 고대인들이 머리를 짜내어 와인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마치 불처럼 발견되기만을 기다리던 자연적인 현상에 가까웠다.
프랑스의 화학자인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도 미생물학 연구를 통해 처음 알게 된 ‘발효’라는 개념을 발표하면서 “그것은 어디까지나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었습니다.”라고 자신의 발명을 발견이라 정의했던 것처럼 와인 또한 발효의 개념이 인류에게 알려지기 전부터 함께 해왔던 동반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와인은 인간의 노력에 자연이 함께해 줄 때 비로소 질 좋은 와인으로 탄생할 수 있으며, 와인의 제조엔 특별할만한 그 어떤 것도 인위적으로 첨가되지 않는다. 수확된 포도알맹이 속엔 와인을 제조하는데 필요한 모든 게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수확기 포도껍질에 하얗게 붙어있는 천연 이스트(Yeast)는 양조장까지 옮겨져 본격적으로 제 역할을 시작한다.
양조장에서 포도를 으깰 때 이스트가 포도원액 속의 당분을 분해시켜 알코올로 바꿔주는 역할을 시작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기술이 개발됐지만 와인제조업자들이 여전히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는 것은 자연이 선사하는 풍요로움만이 최고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와인은 적도를 기준으로 일정한 위도근처에서 재배된 질 좋은 포도에 자연과 과학, 예술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최고의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기후조건이 맞아야 한다. 토양, 강수량, 일조량 등의 자연 기후조건이 질 좋은 포도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그 다음은 와인의 제조기술을 가진 사람들의 독창적인 와인 제조방법에 의해서 와인이 완성된다. 인간과 자연의 노력, 기다림, 순응을 통해 얻어진 와인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출처 : 시사캐스트(http://www.sisacast.kr)
글 : 박한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