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넘어 미국에 이룩한 초콜릿 산업
밀크 초콜릿 대중화를 이룬 “밀턴허쉬”
1870년대의 미국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초콜릿이 클레식한 다크 초콜릿의 권위에 도전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밀크 초콜릿이었다. 밀크 초콜릿에는 우유 고형물과 설탕이 첨가되어 있어 그 풍미와 질감, 달콤함까지 기존의 초콜릿과는 전혀 달랐다.
밀크 초콜릿은 1875년 스위스 네슬레사(Nestle)에서 처음 개발되었지만 그로부터 25년 후 밀크 초콜릿을 미국에 처음으로 선 보인 사람은 펜실베니아 출신의 밀턴허쉬였다. 밀턴허쉬(Milton S.Hershey)는 여러 번의 실패와 기술혁신을 통해 밀크 초콜릿의 대중화에 기여한 사업가이다.
하지만 유럽인들의 초콜릿 제조에 대한 독점욕으로 인해 유럽 밖에선 그 누구도 밀크 초콜릿 제조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제조법을 알아내기 위해 허쉬가 직접 스위스까지 찾아가게 되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1897년 허쉬는 밀크 초콜릿에 맞는 최적의 성분조합을 알아내기 위해 실험을 시작했고 1899년 마침내 밀크 초콜릿의 공식을 찾아내게 되지만 그 맛이 유럽의 밀크 초콜릿과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을 새로운 맛의 밀크 초콜릿 판매로 이어갔다.
허쉬의 밀크 초콜릿은 코코아 버터 보다는 설탕과 우유의 함량이 높았고 이것은 맛에 대한 새로움 이외에도 원가의 절감이라는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코코아는 값비싼 재료였기 때문에 우유와 설탕의 첨가 비율이 높아질수록 제품의 원가를 낮출 수 있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허쉬는 새로 개발한 초코바를 단돈 5센트에 판매할 수 있었다. 이는 1900년대임을 감안한다 해도 매우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저렴한 가격의 밀크 초콜릿과 초코바는 대중들에게 그 맛처럼 부드럽게 스며들어가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초콜릿 혁명에 가까울 정도로 선풍적이었다.
1907년은 허쉬 초콜릿이 또 하나의 혁명적인 제품을 선보이게 된다.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도 사랑 받고 있는 “키세스(Kisses)” 초콜릿이다.
허쉬는 포장을 벗기는 대로 손쉽게 입에 넣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고민했고 다크, 밀크, 카라멜, 마시멜로, 아몬드 등등의 다양한 키세스 제품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각각의 키세스 초콜릿 안에는 작은 종이 띠가 들어있다. 은박지에 삐죽이 솟은 이 종이 띠는 1921년 모조품이 아닌 진짜 허쉬 제품이라는걸 알리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1920년대 초콜릿 시장이 커지면서 수 백여 개의 초콜릿 회사가 문을 열었고 그와 함께 쏟아져 나온 비슷한 제품들과의 차별화를 위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던 키세스 초콜릿만의 아이디어였다.
초콜릿 경쟁의 시작을 알린 초코바
미국 구구사(Goo Goo)의 견과류, 마시멜로 등이 혼합된 최초의 혼합 초코바인“구구크러스터(Goo Goo Cluster)”를 시작으로 1920년대에만 4만여 종의 초코바가 시판되기 시작하였고 당시 유행을 아이디어로 한 새로운 초코바 개발도 계속 진행되었다. 그 당시 유행했던 초코바들의 이름 중“챨스톤 츄(Charleston Chew)”라는 초코바는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춤에서 그 이름을 따왔고,“치킨디너(Chicken Dinner)”는 바쁜 사람들에게 한 끼 식사로 충분한 영양을 지녔다는 의미를 앞세워 판촉활동을 벌였으며,“베이비루스(Baby Ruth)”는 누가, 초콜릿, 카라멜, 땅콩이 버무려진 형태의 초코바로 뉴욕양키스의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비루스 활약과 함께 사랑받는 초코바가 된다.
그 후‘프랭크마스(Frank C.Mars)’라는 인물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초기의 초콜릿 회사들 중 어떤 회사도 허쉬의 적수가 되지는 못했다. 마스사(Mars)는 1923년 계란, 설탕, 물을 섞어 엿기름 맛이 나는 초코바로 첫 성공을 거두면서 허쉬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민다. 마스사의 초코바에는 값이 싸고 쉽게 부풀어 오르는 성질의 누가를 첨가하여 허쉬의 독주를 저지하기 시작한다. 마스사의 “밀키웨이(Milky Way)”가 그 장본인으로 대형 초코바로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1930년의 “스니커즈(Snickers)’, 1932년의 “삼총사(3 Muskereers)”로 이어져 허쉬사 와의 정면 대결구도를 만들어 나가게 된다.
[발렌타인데이의 유래]
발렌타인데이는 3세기경(269년) 순교한 성 발렌티노(Valentinus)를 기리기 위해 시작된 서양의 풍습에서 유래된 것으로 발렌티노는 서로 사랑하는 두 남녀를 황제의 허락 없이 결혼 미사를 올려준 죄로 순교한 사제의 이름이다.
그가 순교한 뒤 이날을 기념하게 된 것은 14세기부터로 연인끼리 특별한 형태의 축하카드를 주고받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 를 통해 젊은 여성들은 자신이 원하는 기사를 선택하고 선택되어진 기사는 자신을 선택한 여성에게 선물을 선사했다고 한다.
처음엔 남녀가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던 풍습이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여자가 남자에게 선물로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날로 바뀌었고, 선물이 초콜릿으로 정해진 것은 1960년대 일본의 한 제과회사 여사원의 아이디어를 활용한 것으로 이때부터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기 시작하였다고 하며, 그 후 화이트데이로 이어지는 판촉 전략으로도 이용되며 현재와 같은 문화로 정착되게 된다.
출처 : 시사캐스트(http://www.sisacast.kr)
글 : 박한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