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 문화’로 자멸한 성공한 기업.
말 많고 탈 많은 남양유업의 기업사를 살펴보면 이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창업 57년 만에 ‘남양 홍씨 일가의 오너 경영’에서 손을 떼야 할 위기에 몰린
남양유업 홍원식(71) 회장의 이야기다.
얼핏 보면 홍 회장은 코로나19로 쓰러진 기업인으로 볼 수 있다.
남양유업 제품인 불가리스가 “코로나19 면역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며
과장 광고를 했다가 거센 역풍에 기업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홍 회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홍 회장 측의 보유지분과 경영권을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한앤코)에 넘기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미적거리다가 한앤코와 법적 분쟁을 벌여 다시 눈총을 받았다.
최근에는 김치냉장고 위니아딤채를 생산하는 전자업체인 대유위니아그룹에 회사를 넘기겠다고 밝혀,
제3자에 기업을 넘길 의사가 있는지까지 의심을 사면서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남양유업은 70년대 ‘전국우량아선발대회’로 전 국민에게 회사 이름을 알리면서 급성장했다.
이후 2010년에는 CJ제일제당과 농심, 롯데칠성음료와 같은 식품업체 매출 1조 원 클럽에 들 정도로
큰 기업이 됐다.
하지만 공룡 같은 거대한 기업으로 커졌는데도 회사문화는 여전히 구멍가게 수준에 머물렀다.
지분구조만 살펴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홍 회장의 보유지분만도 51%다. 1997년 외환위기 땐 ‘무차입 경영’으로 명성을 날렸다. 회사 규모로 볼 때 임원 숫자가 가장 적은 상장회사로도 유명했다.
그런 가운데 임원진에 큰아들과 둘째 아들도 끼어있다. 대부분 다른 임원은 60대다. 최근 회사 매각과정에서 46세의 김승언 상무가 기용된 것이 젊은 임원으로 뉴스가 될 정도다.
10원짜리 동전 한 개 나갈 때도 홍 회장이 혼자 다 챙겨보는 구멍가게식 경영 스타일을 고집했다.
바꿔말하면 모든 기업경영의 의사결정 구조가 전문경영인 없이 홍 회장 독단적인 1인 지배체제로 운영됐다. 기업 내 모든 직원은 홍 회장의 지시만 충실히 집행하는 방식이었다.
1인 의사결정 구조의 효율성일까?
2013년 5월.
남양유업의 주당 가격이 117만5천 원을 찍고 초우량기업이 됐다.
동시에 신의 심술인가? 호사다마인가? 오랜 곪은 고름이 터진 걸까?
2013년 5월.
국내 5대 갑질 사건 중 하나로 불리는 ‘조폭 우유 사태’가 터졌다.
영업사원이 본사에서 강매하는 제품(밀어내기 강매)을 거부하는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퍼부은
음성파일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물건 못 받는다고? 죽여버린다. 씨x 잔인하게 해줄게. 핸드폰 끄고 안 받으면 알아서 해. 망하라고 xxx야.”
남양유업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지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전문적인 대처가 아닌 어설픈 늦장 대처로 일관했다.
이후 남양유업의 ‘슈퍼 갑질 연대기’가 장안의 화제가 될 정도로 이미지가 급속도로 악화했다.
여직원이 결혼하면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신분을 바꿔놓고, 임신하면 사표를 내도록 강요했다.
홍 회장은 부인하고 있지만 직접 여직원들에게 임신 포기각서를 쓰게 했다는 지적까지 받았다.
일상화된 불매운동으로 회사 제품에 남양유업 표시를 제대로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주당 117만 원을 넘던 초우량기업 남양유업 주가는 1/3로 떨어져 현재는 40만 원대에 머물고 있다.
불가리스의 코로나19 효능 과장 광고는
공룡기업을 최종적으로 쓰러뜨리는 구멍가게 기업문화의 최종 바이러스였다.
최로엡 loep@scorep.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