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재벌이 되는 기본적인 방법은 ‘시대의 트렌드’를 읽고, 사업의 호기를 만드는 것이다.
개인 컴퓨터(PC)가 확산하던 3차 산업혁명 시대. 부산 서면의 구멍가게 같은 매장에서 컴퓨터를 팔던 한상수 사장은 ‘서비스 시대의 트렌드’를 읽고 무릎을 쳤다. 컴퓨터 무료 수리, 평생 A/S를 내걸고 1991년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로 올라와 강남의 상가빌딩 한 채를 빌려 파격적인 세진컴퓨터랜드를 열었다. ‘무료수리·평생A/S’에 고객이 밀려들어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순식간에 전국에 걸쳐 76개 매장을 열었다. 텔레비전·신문에는 진돗개를 앞세운 세진컴퓨터랜드 광고로 도배질했다. 개그맨 강호동을 모델로 썼다. 5년 만에 삼성전자, 삼보컴퓨터에 이어 매출기준 3위의 컴퓨터 유통기업이 됐다. 대우전자는 명함도 못 내밀던 때다.
당시 한 사장을 인터뷰했다. 그 많은 자금조달 방법과 급성장 비결, 사업 위험성을 물었다.
“장사는 목이다. 난 신경 안 쓴다. 돈 빌려 빈 상가빌딩을 싸게 임대해 최대한 큰 매장만 차리기 때문이다. 그런 뒤 기업에서 물건을 최대한 많이 받아 즉시 팔고, 대금은 어음으로 3~6개월 뒤 최대한 늦게 준다. 큰 매장이 많을수록, 컴퓨터값을 늦게 줄수록 그 기간 내 쌓인 현금을 확보해 레버리지로 활용한다.”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경영방식인데 본인은 ’혁신경영‘이라고 했다. 세진컴퓨터랜드는 이내 부도를 냈다. 무료 수리, 평생 A/S를 믿고 컴퓨터를 사려고 줄을 섰던 소비자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봤다.
1차 산업혁명은 생산 시대, 2차 산업혁명은 품질 시대였다면 이때의 3차 산업혁명은 서비스 시대였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의 한복판에 서 있다. 플랫폼 시대다. 소비자와 판매자를 연결하는 생태계를 만들어 놓으면 승자독식으로 떼돈을 버는 시대다. 무료든 할인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회원 수를 많이 늘리면 대박을 친다. 다음카카오의 김범수 창업자, 쿠팡의 김범석 창업자, 배달의민족 김봉진 창업자가 대표적이다. 이를 추종하는 수많은 플랫폼 구축 사업자가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뛰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머지포인트의 권남희 대표도 그중 한 명이다. ‘무제한 20% 할인’ 플랫폼. 젊은 층의 입소문을 타면서 회원 수가 급증했다. 누적 이용자 수 100만 명, 하루 평균 접속자가 20만 명이었다.
전통적인 상품권 할인사업은 10%가 마지노선이다. 사놓고 쓰지 않는 ‘장롱 상품권 수익’까지 감안해서 그렇다. 머지포인트의 20% 할인은 팔면 팔수록 적자가 쌓이는 사업구조다.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경영방식이다. 하지만 머지포인트의 권 대표는 “기간 내 수익을 레버리지로 활용하는 혁신적인 사업모델”이라고 주장했다. 회원 수가 많을수록 큰 수익이 보장되는 플랫폼 사업의 성공 문턱까지 도달하기도 했다.
성공하면 사업이고, 실패하면 사기다. 김범수·김범석·김봉진 창업자도 한때 부도 직전까지 가는 위기를 딛고 사업을 성공시켰다. 창업자와 이용자가 ‘시대적 기쁨’을 누린 셈이다. 권남희 대표도 기로에 섰다. 위기의 강을 건너지 못한다면 고전적인 폰지사기가 된다. 창업자와 이용자가 겪는 또 하나의 ‘시대적 아픔’이 될 것이다.
최로엡 loep@scorep.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