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쿠바에서 영감을 얻다
쿠바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는 늘 시가와 칵테일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아바나의 유명한 바인 엘 플로리디타(El Floridita)에 앉아 프랑스의 작가 겸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 미국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 영화배우 게리 쿠퍼·에바 가드너·마를레네 디트리히 등 세계적인 명사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교유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곤 했다.
헤밍웨이가 특히 좋아했던 칵테일은 모히토(Mojito)와 다이키리(Daiquiri), 쿠바리브레(Cuba Libre)와 더불어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쿠바의 3대 칵테일이다. 그는 사방의 벽과 식탁들이 온통 낙서로 가득한 유명 식당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La Bodeguita del Medio)에 앉아서 모히토를 마시다가 기분이 나면 엘 플로리디타로 옮겨가 다이키리를 주문하곤 했다.
그가 얼마나 칵테일을 좋아했던지, 한 바텐더는 그의 이름을 따서 ‘헤밍웨이 스페셜’이라는 칵테일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도 이 두 술집은 헤밍웨이의 흔적을 더듬어가며 쿠바 칵테일의 독특한 맛을 즐기려는 외국인들로 언제나 초만원이다.
쿠바의 자유를 뜻하는 ‘쿠바 리브레’
원래 칵테일은 쿠바에서 시작되진 않았지만 20세기 초 미국인들에 의해 전해지면서부터 순식간에 쿠바 전역을 휩쓸게 되었다.
아열대 기후에 다양한 과일, 그리고 세계 최고의 럼주를 생산하는 쿠바가 칵테일 강국이 된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칵테일은 미국 독립전쟁(1775~1783) 때 처음 등장했으나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의 제빙산업이 발달하는 18세기 말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쿠바인들은 이보다 100년가량 늦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비로소 칵테일의 독특하고 다양한 맛을 알게 되었다. 미국과 스페인 간의 전쟁(1898)에서 승리한 미국이 쿠바에 대한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하면서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온 일종의 부산물인 셈이다.
초기 칵테일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쿠바 리브레로 콜라가 쿠바에 수입되면서 여기에 럼주와 레몬을 섞어 만든 것인데, 아바나에 있던 아메리칸 바라는 술집에서 처음 선보였다고 한다. 당시 오랜 스페인 식민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독립운동을 벌이던 쿠바인들은 이 시원하고 새로운 맛의 음료수에 ‘자유 쿠바’라는 뜻의 쿠바 리브레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다이키리와 모히토, 쿠바의 상징이 되다
설탕, 레몬즙, 화이트럼에 대패질한 얼음(Shaved Ice)을 섞어 만드는 다이키리는 쿠바 동부 산티아고 데 쿠바 지역에 있는 다이키리 근처의 광산에서 일하던 한 남성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초에는 위스키사워의 일종으로 만들어졌는데 훗날 엘 플로리디타에서 일하던 바텐더가 대패로 민 얼음(Shavede Ice)을 첨가하면서 독특한 맛을 자랑하게 된다.
이렇게 유행하기 시작한 쿠바의 칵테일은 1920년대 들면서 때마침 미국의 금주령을 피해 쿠바로 몰려온 관광객과 사업가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1940년대에 칵테일 기술이 더욱 섬세하고 세련미를 더해 가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것이 오늘날 쿠바의 상징으로 불리는 모히토이다. 민트와 럼주, 설탕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모히토는 시원하면서도 알코올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 오늘날까지도 단연 최고의 칵테일로 사랑받고 있다.
그 밖에도 럼과 코코넛 밀크를 섞어 얼음과 함께 마시는 사오코 등 외국 관광객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쿠바인들 사이에서는 마치 토속음식처럼 통하는 칵테일도 그 종류가 아주 많다.
쿠바 바텐더협회의 간부인 훌리오 세사르 멘네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쿠바의 칵테일은 단순한 재료의 혼합이 아니라 진정한 창조물이자 예술작품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단지 배합의 지식만 가지고는 진정한 칵테일을 만들 수 없습니다. 미(美)에 대한 사랑, 그리고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이 없으면 칵테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글 : 박한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