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첫 시험비행에 나선 국산 KF-21 전투기가 제 성능을 발휘할 채비를 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초음속 비행과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더 탑재 비행 등을 실시한 KF-21은 미티어 중거리 공대공미사일과 AIM-2000 단거리 공대공미사일 무장 분리, 공중 기총발사에도 성공했다.
실전에 대비해 전투기가 반드시 갖춰야 하는 공격 및 탐지 능력을 점검하는 과정이 하나씩 이뤄지는 셈이다.
FA-50 경전투기가 폴란드에 이어 말레이시아와도 수출 계약을 맺는 등 해외 판매량이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KF-21도 FA-50 못지 않게 세계 전투기 시장에서 수주 성과를 올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나온다.
F-16 도입국이 국산 항공기 수출 대상
방위산업계에서는 미국산 F-16 도입 국가들이 T-50 계열이나 KF-21의 잠재적 수출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술적 특성이 비슷하고, 국제정치적 환경에 의한 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T-50 계열 항공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F-16과 비슷한 측면이 적지 않다. 우선 비행에 필요한 지상 지원 장비 중에서 두 기종이 공통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평가다.
조종석에 있는 디스플레이의 경우 F-16 블록50까지는 유사하며, 조종사가 사용하는 스틱의 위치도 F-16과 동일하다.
이같은 특성은 F-16 조종사 양성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게 해준다.
조종사가 다른 훈련기로 훈련을 받은 뒤 F-16으로 전환하려면 추가 교육을 받아야 하지만, T-50은 계기 배치와 조종특성이 F-16과 매우 유사해 F-16으로의 전환이 매우 쉽다. F-16 조종사가 T-50 계열 항공기로 기종 전환을 하는 것도 간단하다.
공군 전투기 부대 지휘관들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조종사의 신속한 교육·훈련이란 점을 감안하면, F-16을 운용하는 국가에서 T-50 계열 항공기를 도입할 경우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된다.
운영유지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다. 주력 전투기와 별도로 다른 전투기를 운용하면 정비와 후속군수지원, 유지비 등에 대한 부담이 증가한다. 이같은 부담을 최소화하려면 부품과 정비 체계 등이 서로 비슷해야 한다.
T-50과 F-16은 80% 가량의 부품이 호환된다. 후속군수지원의 효율성이 높고, F-16 정비사와 T-50 계열 정비사 간의 전환교육 역시 용이하다. 적은 비용으로 전투력이 높아지는 결과가 나오는 셈이다.
국제정치적 측면에서도 F-16의 존재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미국 무기를 도입한 적이 없는 국가들은 보안 또는 정보보호 관련 협정을 미국과 체결하지 않은 경우가 꽤 있다.
과거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T-50을 모 국가에 수출할 때, 미국과의 비밀보호협정이 없어 통신 보안 관련 장비를 인도하지 못했다. 해당 국가가 미국과의 문제를 해결한 후에야 관련 장비를 따로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F-16은 미국의 항공 전자·무장·기계 등의 분야 기술을 종합한 전투기다. 이같은 기술이 들어 있는 무기를 판매했다는 것은 미국의 군사 과학기술 이전을 가로막는 정치적 장벽이 상당 부분 제거됐다는 의미다.
이같은 요소들은 폴란드가 FA-50 48대 구매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폴란드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한 직후 처음 도입한 서방 전투기가 F-16이다. 전력증강 차원에서 F-35A 스텔스 전투기도 들여온다.
FA-50은 F-16과 높은 수준에서 호환이 가능하다. 폴란드가 러시아산 미그-29 전투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고 F-35A·F-16·FA-50으로 공군 전력을 재편하면, 한국 공군과 유사한 전력구조를 갖추게 되는 셈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각국이 군비 증강을 서두르는 상황에서 폴란드 사례가 F-16을 사용하는 서방 국가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KF-21 수출도 가능할까
KF-21 수출도 이와 비슷한 개념이 적용될 수 있다. F-16 운용국이 FA-50을 도입하고, 이후에 KF-21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FA-50을 장기간 운용한 국가의 공군은 한국산 무기 특성에 익숙해진다. 정비와 후속 군수지원 및 훈련, 전력구조와 운용 등도 한국 공군과 비슷해진다.
기술적 특성이 다르거나 공통점이 적은 기종으로 전환하는 것은 군사·경제적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동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산 무기를 서둘러 퇴역시키는 것처럼 정치적 요인이 불거지지 않는다면, 신형 군용기는 기존에 운용 중인 기종을 생산한 나라에서 사들이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같은 전례를 감안하면 FA-50을 오랜 기간 사용한 국가들이 신형 전투기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한국산을 먼저 고려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FA-50 도입을 결정한 폴란드는 KF-21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개발 및 양산과 운영과정을 지켜보면서 관련 결정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F-16을 도입하지는 않았지만, T-50 계열 항공기를 도입한 태국과 필리핀 등도 KF-21의 수출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F-35A 도입을 원하지만 정치·경제적 이유로 구매가 어려운 국가에도 KF-21이 대안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독일이 F-35A 도입을 결정했고, 루마니아를 비롯한 일부 동유럽 국가들도 구매를 검토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강력한 스텔스 성능을 갖춘 미국산 전투기로 공군력을 증강하고, 미국과의 전략적 관계를 더욱 강화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모든 국가가 F-35A를 구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F-35A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지만, 도입비와 운영유지비 규모는 4세대 전투기보다 크다.
정치적 문제로 미국이 판매에 소극적으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 프랑스 닷소가 개발한 라팔 전투기는 이같은 부분을 파고들면서 아랍에미리트(UAE), 인도네시아, 크로아티아, 이집트에 수출되는 성과를 거뒀다.
F-16은 4세대 전투기다. KF-21은 이보다 진보한 4.5 세대 기종으로 평가받는다. 중장거리 타격력 등을 앞세워 판촉활동을 한다면, 중남미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에서 수출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KF-21에 탑재되는 미국산 F414 엔진은 KF-21이 미국 정부의 수출 허가에 의한 제약에 직면할 위험을 내포한다.
유럽 에어버스가 개발한 유로파이터는 지속적인 성능개량을 통해 미국 정부 수출 허가 대상이 될 만한 기술 요소를 줄였고, 프랑스 라팔은 100% 독자 기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도 KF-21 탑재 엔진을 국산화해 수출 리스크를 줄일 필요가 있다.
정부는 무인기 엔진 개발 등을 토대로 인프라와 기술을 확보한 뒤 2030년대 후반을 목표로 F414와 유사한 국산 항공엔진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KF-21 수출을 위해서는 개발 기간 단축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철저하고도 세심한 후속군수지원도 필수다. 일부 국가에서는 가동률 향상을 위해 제작업체가 군수지원을 전담하고 그 성과에 따라 대금을 받는 성과기반군수지원(PBL), 무기체계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하는 국방품질경영 등의 개념이 미약한 경우가 있다.
이같은 경험을 활용한다면, 차별화된 수출 패키지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다.
내년 중으로 KF-21 양산이 본격화하면, FA-50과 더불어 KF-21 수출을 위한 활동도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수출이 성사되면 KF-21 생산 물량 증가와 더불어 부품 및 장비 공급망 유지, 단가 하락 등에도 긍정적 영향이 예상된다. 고부가가치 분야인 항공우주산업의 발전에도 탄력을 받는다. KF-21의 수출을 위한 정부와 업계의 신속한 활동이 중요한 이유다.
김주용 기자(jykim@scorep.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