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SBS뉴스 캡처
대한민국에서 ‘조직의 자정 능력’이라는 말을 오랜만에 들어본다.
조직의 자정 능력이란 성숙한 민주주의를 거론할 때 쓰는 말이다.
말 많고 탈 많을 것 같은 3.9 대통령 선거를 총괄하면서 가장 공정해야 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들려온 소리라 의미가 더 크다.
전 국민이 궐기해 군사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정권을 세운 것과 같은 큰 뜻이 담겨 있다.
선관위 2900명 조직원이 강력한 대통령의 음모와 횡포(?)를 꺾고 일으킨 무혈혁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3.9 대선의 공정한 관리 조직인 선관위 상임위원은 9명이다. 하지만 현재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등이 임명한 친여성향의 상임위원이 7명으로 야당·보수언론으로부터 선거부정 의혹과 편향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간 선관위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된 인물은 조해주 상임위원이다. 문 대통령이 자신의 선거 특보를 지낸 사람을 상임위원으로 앉혔기 때문이다. 계급이 깡패라고 자조 섞인 비판은 할 수 있었지만 합법적 행위를 누구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조 상임위원이 임기 3년이 끝나자 바로 퇴임하는 60년 관례를 깨고 문 대통령이 편법 연임을 강행했다. 문 대통령이 조 상임위원의 사직서를 반려해, 비상임 일반 위원으로 전환해서 3년 임기를 더 하도록 했다. 임명 당시 정치 편향, 선거관리 불공정 논란 인물을 ‘희한한 방식의 꼼수’로 국민을 기만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임기 말 알박기 인사라는 지적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야당, 보수언론의 불공정 지적과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군사정권의 이런 류 행태에 치를 떨며 인권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이 지금 문 대통령이 맞느냐며 고개를 갸우뚱한 국민이 더 많았다.
하지만 침묵하고 있던 선관위 구성원 2900명이 들고 일어났다. 중앙선관위 실국장단, 과장단, 사무관단을 포함한 전 조직원이 조 상임위원의 사퇴를 요구했다.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선관위 지도부도 그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조 위원님은 선관위에 부담을 주면서 임기를 시작했고, 재임 중에도 정치 편향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며 “이번에 임기가 연장되면 앞으로 선거부정 의혹과 선거결과 불복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를 냈다.조 상임위원은 조직 전체의 반란(?)에 버티지 못하고 끝내 물러날 뜻을 밝혔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든든한 빽(?)도 소용이 없었다.
청와대 박수현 수석은 “선거가 얼마 남지 않고, 신임 상임위원 임명 땐 인사청문회에서 발생할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기 위해 조 상임위원의 사표를 반려했으나 본인이 일신상의 이유로 재차 사의를 표명해 이를 수용했다”고 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창피함도 잊고 비굴한 변명을 해야만 했다. 그간 자행한 수많은 뻔뻔함의 극치라는 지적에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어느 나라나 최고 지도자 한 명의 지시에 그 아래 조직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민주주의가 아직도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최고 지도자가 불합리한 지시를 했을 때도 견제하지 못하고 그대로 따르는 게 독재정권이다. 그 정도에 따라 제왕적 조직문화, 조폭 같은 조직문화, 가부장적 조직문화라고 표현할 뿐이다. 이런 조직은 검찰, 경찰, 언론 등 우리 주변에 수없이 많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선관위만큼은 이런 말을 듣지 않을 권리가 있다. 국민이 인정해줘야 한다. 아니 세계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인정해줘야 한다. 선관위 모든 조직원의 노고를 응원한다. 최로엡 loep@scorep.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