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66.사진)은 지난달 마이클 터슈먼 미 하버드대 교수,
찰스 오라일리 미 스탠퍼드대 교수로부터 온라인 자문을 받았다.
지난주에는 대런 아세모 글루 미 매사추세츠 공대 교수와 향후 정책 방향을 논의했다.
일본 관방장관은 내각을 이끄는 총리를 보좌해 국가 정책의 기획과 입안을 담당하는 사람.한 조직의 지도자가 평소 무슨 책을 읽고, 누구를 만나고 다니는지 알 수만 있으면 그 조직의 향후 전략을 가늠할 수 있다.
최근 가토 관방장관의 행보를 통해 일본 정부가 ‘코로나19 이후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을 고민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자문 받은 해외 석학들의 학문적 입장까지 살펴본다면 일본의 포스트 코로나 정책 방향을 어느 정도 예견할 수도 있다.
가토 장관이 자문 받은 마이클 터슈먼 교수와 찰스 오라일리 교수는 ‘양손잡이 경영’으로 유명한 경영학자들. 팬데믹 같은 급격한 환경에 조직이 잘 대응하고 적응하려면 ‘양손잡이와 같은 능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다.
일반적인 기업들은 자신의 역량 발휘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특히 현재 사업이 잘되고 있다
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런 현상을 두 학자는 ‘혁신가의 딜레마(innovator’s dillemma)’라고 했다. 현재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급변하는 다음 단계의 전략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손잡이 능력이 있는 조직은 보유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는 일(exploit)과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일(explore)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설명이다. 이런 기업으로는 월마트, USA투데이, IBM을 손꼽았다. 기존 사업을 효율적으로 잘 관리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율성, 실험정신으로 새로운 시장을 잘 개척한다는 것이다.
필름 시대에서 디지털카메라 시대로 전환됐을 때 최고회사였던 코닥은 적응하지 못하고 파산한 반면, 후지필름은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양손잡이 경영을 했느냐, 안 했느냐로 판가름됐다는 분석이다.
또 일 관방장관과 정책 논의를 했다는 대런 아세모 글루 교수는 “자본주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로 분배의 실패를 신랄하게 비판한 학자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양극화가 더 심화된 자본주의 위기를 지적하고 있다.
그는 “민주주의가 분배 개선을 해준다는 증거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운 좋은 놈이 부를 쌓으면 운 나쁜 놈에게 횡포를 부린다”고 극단적으로 말한다. 부를 쌓은 자가 정부와 정치를 포섭해 자신의 부를 더 확대하는 정책을 유도하기 일쑤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각 국가의 사회안전망 균열을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복지국가 2.0’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잘 설계된 실업 수당,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는 고용프로그램, 더 저렴한 주택 공급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현재 한국과 일본은 코로나 이후의 숙제뿐 아니라 비슷한 정치적 변곡점에 놓여 있다.
두나라는 새로운 대통령과 새로운 총리를 각각 뽑기 위한 선거 국면으로서 어수선하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일본의 관방장관은 흔들림 없이 코로나 이후의 국가 정책을 걱정하고 연구하는 자세를 보여줘 부럽기만 하다. 한국의 어느 장관이나 어느 공무원이 포스트 코로나 국가정책을 위해 고민하고 뛰어다닌다는 뉴스를 최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과문한 탓이길 바랄 뿐이다.
최로엡 loep@scorep.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