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계기로 한미 양국이 배터리, 로봇 등 첨단산업과 원전, 수소 등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23건의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국제정치 질서의 급변과 공급망 대재편 시대를 맞아 한미 정상이 양국 관계를 전통의 ‘외교·안보 동맹’에서 ‘산업·기술 동맹’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의지를 강조하는 가운데 나온 결과물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한미 양국 기업·기관 대표 45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미 첨단산업·청정에너지 파트너십’ 행사를 열고 23건의 MOU를 맺었다 26일 밝혔다.
분야별로는 배터리, 바이오, 자율주행차, 항공, 로봇 등 첨단산업 분야 10건과 수소, 원전, 탄소중립 등 청정에너지 분야 13건이다.
배터리서 자율주행·로봇·항공까지…한미 첨단산업 ‘맞손’
이번 MOU 체결을 계기로 한미 양국의 배터리, 바이오, 자율주행차, 항공, 로봇 등 첨단산업 분야 기업과 연구소, 공공기관들은 공동 연구, 인력 교류, 제품 개발, 인증 표준 등 다양한 협력을 추진한다.
최근 양국 기업을 중심으로 협력이 확대되고 있는 배터리 분야에서는 한국배터리산업협회, 한국전자기술연구원,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미국 배터리협회(NAATBatt)와 MOU를 맺고 이차전지 분야 연구개발과 인력교류, 표준 마련에 관한 협력을 하기로 했다.
산업부는 이를 통해 이차전지 시장 진출 및 기업 유치를 위한 상호 지원 네트워크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배터리산업협회는 “우리 배터리 기업의 미국 진출 안착을 지원하고 해외우려기관(FEOC),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등 향후 발표될 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부 지침에 대한 아웃리치 활동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차 분야에서는 한국자동차연구원 등 국내 연구기관과 미국 협회 간 공동 연구, 표준 개발 협력에 관한 MOU가 체결됐다.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를 위한 포석이다.
항공 분야에서는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과 미국 보잉사가 상용 항공기 생산 시스템, 도심 항공용 모빌리티 기술 등에서 공동 연구 및 인력 교류를 하기로 했다. 국내 업체의 글로벌 우주항공 분야 진출 확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산업부는 내다봤다.
로봇 분야에서는 두산과 두산로보틱스가 공장 자동화 솔루션 업체인 록웰과 스마트 공장을 위한 기술 개발 및 마케팅 협력 강화 MOU를, 한국산업기술시험원과 북미통신산업협회(CTIA)가 사이버 보안 분야 MOU를 각각 맺었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한국바이오협회와 미국바이오협회(BIO),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과 MCPHS(보스턴약학대),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과 AABB(혈액은행협회) 간에 각각 MOU가 체결됐다.
바이오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기업 교류를 지원하고 국내 산학연과 미국 대학 간 국제 공동 연구를 진행하기로 하는 등 폭넓은 협력 창구가 열렸다.
한미 에너지협력, 청정에너지로 확대…기업들도 ‘잰걸음’
한미는 석유와 가스를 중심으로 한 전통 에너지 분야에서 소형모듈원자로(SMR)를 중심으로 한 원전, 수소, 암모니아, 신재생 에너지, 핵심 광물 등 청정 에너지 분야로 협력을 확대했다.
이번 윤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체결된 관련 MOU만 13건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망 다변화 필요성이 제기된 원전 연료 분야에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미국 원전 연료 업체인 센트러스는 수급 협력을 위한 MOU를 맺었다.
차세대 원전으로 주목받는 SMR 분야에서는 한수원과 SK이노베이션이 빌 게이츠가 설립한 미국 SMR 업체 테라파워와 쇼듐냉각고속로 기반 4세대 SMR 건설·운영 공동사업 추진을 위한 MOU가 나왔다.
미국 측의 설계 역량과 한국 측의 제작·운영관리·금융 역량을 결합해 제3국 시장 진출을 위한 기업 간 협력도 가속할 예정이다.
SK와 SK이노베이션은 SMR 시장 진출을 위해 작년 8월 테라파워에 2억천만달러(약 3천억원)를 공동 투자한 바 있다. 테라파워는 2030년 완공을 목표로 미국 서부 와이오밍주에 345MW(메가와트)급 실증 단지를 구축 중이다.
한수원 역시 미국의 첨단 SMR 기업과 첫 협력 관계를 맺음으로써 글로벌 SMR 시장 참여를 위한 데 물꼬를 텄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박지원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수출입은행, 미국 SMR 기업 뉴스케일파워와 글로벌 시장에 SMR 보급을 위한 기술·금융 및 제작·공급망 지원 관련 MOU를 체결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SMR 제작 기술을 고도화하는 것은 물론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수출입은행은 금융 지원을 통해 뉴스케일파워 SMR의 글로벌 사업 확대에 협력한다. 뉴스케일파워는 SMR 사업에 한국 공급망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뉴스케일파워의 SMR 모델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인증 심사를 최초로 마치는 등 전 세계 모델 중 상용화 단계에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19년 국내 업체 중 처음 뉴스케일파워와 지분 투자를 통한 협력 관계를 맺고 SMR 제작성 검토와 시제품 제작을 진행했다.
현대건설은 한국무역보험공사, 미국 홀텍과 글로벌 SMR 사업 확대를 위한 3자 금융지원 MOU를 체결했다.
청정에너지·수소 분야에서는 한전과 GE가 청정 발전 원료인 암모니아, 수소 기술 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
특히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도입으로 미국 내 청정수소 생산 경쟁력이 확보됨에 따라 SK E&S, HD한국조선해양 등 한국 기업들은 GE를 비롯한 미국 기업들과 손잡고 청정수소 공급망 구축에 참여한다.
HD한국조선해양과 SK E&S는 GE, 플러그파워와 ‘블루수소 생산·유통·활용을 위한 전주기 사업 투자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블루수소는 화석연료를 이용해 생산하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로 제거한 수소를 말한다.
참여사들은 국내에 연 25만t 규모의 블루수소를 생산·유통·활용하는 수소 밸류체인을 구축하는데 수소터빈, 수소연료전지 등 미국 기업의 핵심 기술을 조기 적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블루수소 생산 과정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안전하게 운송할 4만㎥급 대용량 액화이산화탄소(LCO) 운반선을 세계 최초로 건조한다.
롯데케미칼도 세계 최대 암모니아 생산 기업인 미국 CF인더스트리스와 미국 루이지애나 지역에서 진행될 청정 암모니아 생산 협력에 관한 MOU를 체결했다. 롯데케미칼은 탄소포집 기술이 적용된 청정 암모니아를 국내로 들여와 전력 발전용, 암모니아 사용 선박용 등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부는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행동하는 한미동맹’이라는 윤 대통령의 이번 국빈 방문 슬로건에 맞춰 미래지향적 첨단분야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했다고 자평했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한미 양국이 그간 군사·안보 동맹에서 나아가 첨단산업·기술동맹으로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며 “이번에 심은 협력의 씨앗들이 조만간 큰 결실을 보기를 기대하며 한국 정부 역시 적극 지원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최로엡 기자(loep@scorep.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