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290회 재판끝…‘사법농단’양승태 47개혐의 싹 다 무죄

4년 11개월 만에 1심 판결…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도 무죄 판단

선고에만 4시간 25분…검찰”판결문 면밀 분석해 항소 여부 결정”

 

5년간 약 290회 공판 끝 사법농단’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기소된 박병대 전 대법관과 고영한 전 대법관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이 2019년 2월 기소된지 1810일, 4년 11개월만에 1심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 합의 35-1부(이종민·임정택·민소영 부장판사)는 26일 열린

양 전 대법원장의 1심 선고 재판에서 직권남용 등 기소된 47개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모든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선고는 오후 2시부터 4시간 25분 동안 진행됐다.

오후 4시10분쯤이 되자 재판부가 10분간 휴정을 선언하기도 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은 대법원장 재임 기간 숙원사업이던 상고법원 도입 등을 위해

박근혜 정부의 도움을 받을 목적으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재판 등에 개입한 혐의 등을 받았다.

또 일부 판사를 ‘물의 야기 법관(판사 블랙리스트)’으로 별도 관리해 인사상 불이익을 주고

‘정운호 게이트’ 관련 판사 비위를 감추려고 검찰 수사 기밀을 수집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재판부는 ‘재판 개입’과 관련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재판을 비롯해 전국교직원조동조합 법외노조 재판,

국자정보원 댓글 사건 등에 대한 개입을 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범죄 증명이 되지않았다고 밝혔다.

또  ‘판사 블랙리스트’와 ‘법관 비위 은폐’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로 판단했다.

 

◇’사법농단’ 의혹, 이탄희 사직서가 시작점…’김명수 법원’ 전격 조사

이 사건은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판사 시절인 2017년 2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으로 발령받은 뒤 사직서를 제출하며 시작됐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 비판적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견제하라는 지시에

이 의원이 항의하자 발령이 번복됐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자체 조사에 나섰다.

2017년4월 18일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으나  젊은 판사들을 중심으로 ‘부실조사’라는 반발이 나왔다.

각 법원 대표판사들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사상 최초로 구성돼 재조사를 요구했으나

양 전 대법원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황은 2017년9월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 급변했다.

대법원은 2017년11월부터 20118년5월꺼지 2차, 3차 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권을 광법위하게 남용한 정황이 드러났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거래하려는 의도로 강제동원 손해배상 사건 등

각종 재판에 부당하게 관여하려 했다는 조사결과는 사회에 충격을 줬다.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성향·동향을 파악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정황까지 드러나

‘사법농단’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들끓는 여론에 결국 김 전 대법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검찰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초유의 대법원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윤석열 중앙지검장, 한동훈 팀장 수사…초유의 사법부 수장 구속

검찰 수사는 2018년 6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사건을 재배당하면서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시 서울중앙지검자으로 수사를 지휘했고,

당시 3차장 검사였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수사팀장을 맡았다.

검찰은 수사 개시 한 달만인 7월 2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임 전 차장은 10월 27일 검찰에 구속됐다.

그 해 11월19일에는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11월 23일에는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두 사람에 대해서도 구속 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듬해 1월11일에는 전직 사법부 수장 최초로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추가 조사 끝에 영장이 청구됐고 ,양  전 대법원장은 1월 24일 구속됐다.

사법부 수장이 피의자로 소환된 데 이어 구속 수감까지 된,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수사는 2019년 3월 5일 마무리됐다. 검찰은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 상임위원,

임성근 전 서우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등 전 현직 판사 10명을 추가로 재판에 넘기고

현직 판사 66명의 비위 사실을 대법원에 통보했다.

 

◇무죄, 무죄, 무죄…양승태·임종헌 재판은 ‘엿가락 공전’

의혹의 정점인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의 재판은 5년간 공전했다.

그러는 사이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판사들은 대부분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핵심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가 성립하는 지였다.

법원은 ‘직권 없이는 직권 남용도 없다’는 법리를 고수해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행정처 법관들이나 수석부장판사 등에게 일선 재판부의 판단에 개입할 권한이 없고,

각 재판부는 법리에 따라 합의를 거쳐 판단했을 뿐이어서 권리행사를 방해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같은 법리에 따라 임성근·신광렬·조의연·성창호·유해용·이태종 6명의 법권은 1~3심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 방창현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도 무죄를 선고받고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하급심에서 일부라도 유죄가 선고된 것은 이민걸 전 실장과 이규진 전 상임위원뿐이다.

항소심에서 각각 벌금 1천500만원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 전 대법관의 재판은 하염없이 늘어졌다.

피고인들이 검찰 증거에 동의하지 않아 211명을 증인으로 신청해야 했고

재판부 교체로 녹음파일만 7개월 가까이 재생하기도 했다.

코로나19가 겹첬고 양 전 대법원장이 폐암 수술을 받아 재판이 열리지 못하기도 했다.

임 전 차장의 재판도 편파 진행을 이유로 두 차례 재판부 기피신청해 재판이 중단되기도 했다.

임 전 차장의 1심 판결은 내달 5일 선고될 예정이다.

김주용 기자 jykim@score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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