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투트랙 정책의 허와 실

한국과 호주 두 나라는 똑같이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편을 들 것인가 고민하면서 살아왔다.

한때 두 나라가 최선의 해결책으로 찾은 것이 투트랙 정책이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한국과 호주의 이런 투트랙 정책은 미-중간 갈등이 깊어질 때마다 안팎으로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의 협박을 동시에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이런 양다리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투트랙 정책을 과감히 포기하고, 미국 편을 드는 원트랙 정책으로 급선회했다.

상징적인 사건으로 한국은 미국의 사드 배치를 꼽을 수 있다.

호주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중국 화웨이의 5G 참여(5세대 이동통신)를 금지한 사건이었다.

중국은 한국과 호주에 똑같은 경제보복을 했다. 시진핑 집권 이후 거대한 자국 시장의 힘인 구매력(수입)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경제적 타격을 줘서 굴복시키려는 정책을 일관되게 펴고 있다.

사드 배치 때는 중국 정부가 한국행 단체 관광상품을 막고 드라마·화장품 등의 수입을 금지했다.

그러나 중국 산업에서 꼭 필요한 한국의 반도체 수입은 눈감아 줬다.

비슷하게 호주와 분쟁 때는 와인과 소고기·랍스터의 중국 내 수입을 금지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꼭 필요한 철광석 수입은 여전히 눈감아주고 있다.

전체 철광석 수입량의 60%를 호주에서 수입하는 실정이라, 이를 막으면 중국 제철산업이 셧다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꿋꿋하게 투트랙 정책을 고수하는 이유는

북한을 설득하는 지렛대로 중국을 이용하려는 정치·외교적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다.

중국에 굴욕적인 자세까지 감수하면서까지 양 강대국의 ‘눈치 보기 정책’을 펴는 논리다.

그러나 호주는 최근 투트랙 정책을 포기하고 미국 편을 드는 원트랙 정책으로 확 바꿨다.

미국 요구에 발맞춰 코로나19의 발원지에 대한 국제조사를 요구해 중국과 충돌하기까지 했다.

호주는 중국이 소고기·석탄·와인·랍스터에 대한 무역보복을 할 때마다 다른 나라로 수출길을

새로 뚫어 대처해 나갔다.

미국은 그 대가로 호주에 다양한 보상을 해주고 있다.

한국에는 금지한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하기로 했다.

미국과 영국·호주 3국 정상이 극초음속 미사일개발, 인공지능과 사이버기술 협력을 아우르는

안보파트너십인 ‘오커스(AUKUS)’ 동맹을 전격 발표하기도 했다.

이어 중국에 맞서는 아시아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로

미국·호주·일본·인도 4개국 정상이 워싱턴에서 만났다.

한국의 문 대통령은 미국의 쿼드 참여 요청도 외면했다.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자주외교를 내세웠다.

호주는 한국과 달리 ‘아시아에서 전개되는 새로운 냉전(Cold War)’에

미국이 승리할 것에 베팅하는 모습이다.

동서고금을 살펴봤을 때 투트랙(양다리) 정책이 성공한 사례는

200년 이상 유지되고 있는 스위스의 영세중립국 이외는 찾아보기 힘들다.

벨기에와 룩셈부르크가 투트랙 정책으로 영세중립국을 선포했지만

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이를 무시하고 침공해 의미가 사라진 것만 봐도 그렇다.

오스트리아· 라오스도 영세중립국을 선언했지만

강대국들의 필요성이 있을 때만 존재할 뿐 아무 의미가 없다.

 

현실적이라기보다는 교과서 같은 이상적인 처신임이 분명하다.

양 강대국과 정상회담을 할 때 자주 국가임을 만방에 선포하듯

다리를 꼬고 보란 듯이 앉아 사진만 찍는 허와 실만 있을 뿐이다.

두 강대국의 힘이 팽팽할 때는 양쪽에서 환영받기보다는, 양쪽에서 핍박 받는 일이 더 많다.

호주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원트랙 정책으로 선회한 셈이다.

호주가 자존심이 없어서 미국에 붙는 게 아니다.

두 강대국 힘의 균형이 깨졌을 때도 양다리를 걸쳤던 국가는 재미를 볼 수가 없다.

커진 힘으로 협조에 미흡했던 국가에 더 압력을 가할 뿐이다.

차라리 한쪽에 베팅한 국가는 적중하면 지분을 요구할 수도 있다.

베팅이 빗나가도 승리한 강대국은 한때 적대적이었던 국가를 포용하는 정책을 쓰게 마련이다.

역사적으로 그랬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원트랙 정책은 나쁠 게 없다.

따라서 양다리 걸친다는 투트랙 정책은 ‘내가 스스로 강대국이 되지 않는 한’

현실을 외면하는 이상적인 정책일 뿐이다.

그럴 바엔 되든 안 되든 영세중립국을 선포하는 게 꼴은 더 낫지 않을까.

최로엡 loep@score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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