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은행들이 선제적으로 대출 죄기에 나서며
새 정부 ‘눈치 보기’에 돌입했다. 오는 7월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도입되기 전 은행들이 미리 대응에 나서는 것도 있다. 다만 은행들의 가계대출 규제가
제각각이라 소비자들 혼란만 가중되는 모습이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이날부터 수도권 소재 1주택자에게 주택구입자금 대출을
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해 9월부터 수도권 소재 2주택 이상 차주에 대해 주택구입자금 용도의
대출을 제한했는데 ‘유주택자 제한’으로 한 단계 더 강화했다. 농협은행은 최근 대면 전세자금대출의
타행 대환 취급을 일시 중단했다. 지난 2일부터 다른 은행에서 넘어오는 전세대출 갈아타기는 받지 않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 4일부터 비대면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의 하단 금리를 0.17%포인트(p) 올렸다.
국민은행은 대출 잔액이 크게 늘지 않도록 관리하는 차원에서 금리를 조정했다. 다만 그동안
하루 150건 정도로 제한했던 비대면 주담대 접수 한도는 500건 이상으로 늘렸다.
우리은행도 지난 2일부터 변동형 주담대 상품의 금리를 4.01~5.51%로 기존 대비 0.06%p 상향하는 등 금
리를 소폭 조정했다.
반면 신한, 하나, IBK기업은행은 대출 한도를 늘리거나 대출금리를 인하했다. 신한은행은 주담대 만기를
기존 30년에서 40년으로 늘렸다. 만기가 길어질수록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줄어들기 때문에 DSR 기준 내에서
더 많은 금액을 빌릴 수 있다.
하나은행은 비대면 주담대 한도를 기존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두 배 늘렸다. 기업은행은 10일부터 주담대
금리를 0.1%p, 전세대출 금리는 0.2%p 인하한다. 비대면의 경우 전세대출 금리를 0.1%p 내리기로 결정했다.
은행들의 대출 정책이 일관되지 않는 것은 대출 여력에서 차이 나기 때문이다. 3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을
앞두고 한도 여유가 있는 은행은 막바지 주택 실수요자들을 잡기 위해 적극적인 상황이다.
대출 여력이 없는 은행들은 조건을 까다롭게 해 수요가 몰리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새 정부의 가계부채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미지수인 만큼 시중은행들이 눈치싸움을 벌이며
선제적으로 발빠르게 전략을 조정한 것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된 후 가계부채 총량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금융당국도 현재 가계부채 총량 관리 기조를 새 정부에서도 이어간다고 밝히며 월·분기별로 은행별
가계대출 총량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각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대출 공급을 조절하도록
유도함으로써 특정 시기에 가계대출이 쏠리지 않게 하겠다는 취지다.
이 과정에서 결국 소비자들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은행들이 눈치를 많이 보는 상황이다. 대출을 받으려는 소비자들의 혼란만 커지고 있다”며
“7월 3단계 스트레스 DSR 도입 전 은행들의 추가 대응이 이어질 수 있다. 대출 문턱을 높이려는 은행들이
늘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차재희 기자(jhcha@scorep.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