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박의 식음료이야기] 초콜릿 1

악마를 치료해 주는 약 ‘초콜릿’

초콜릿은 사랑, 로맨스, 기쁨 등의 대명사로 발렌타인데이, 크리스마스를 통해서 우리 문화 깊숙이 자리함과 동시에, 특유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으로 인해 세상 그 어떤 음식 보다도 감상적인 추억을 만들어 주는 매게체이며, 와인의 3배에 달하는 다양한 성분의 조합으로 우리의 감정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화학적 반응을 이끌어 내는 특효약 이다.

고대문명 국가에서 시작 된 초콜릿

마법과도 같은 초콜릿의 시작은 올매크 문화, 아스텍, 마야 같은 고대 문명이 멕시코와 중남미의 열대 우림에서 카카오 콩을 수확하기 시작했던 약3000년 전 부터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카오 콩은 카카오 나무의 깍지에서 얻을 수 있다. 코코넛 처럼 생긴 깍지 안에서 씨를 꺼내는데 이때 씨 주위에 당도 높은 흰색 과육이 붙어 있지만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선 과육이 아닌 씁쓸하기 그지없는 씨앗만을 모아 불에 볶은 후 칠리나 후추 같은 향신료를 첨가하여 만든다. 하지만 그 상태로는 너무 쓰고 건조해서 먹을 수 없었고 대신 물에 넣어 거품을 낸 후 음료 형태로 만들어 마셨다.

당시엔 특권 계층만이 마실 수 있었던 귀한 음료여서 결혼식, 외교행사 등과 같은 의식에서만 사용되었다. 또한 그 가치로 인해 카카오 콩이 화폐를 대신한 지불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여 아스텍의 몬테쥬마 황제는 보관소를 만들어 저장해 둘 만큼 경제력의 척도가 되기도 했다.

아스텍의 몬테쥬마 황제는 1519년에 새로운 스페인 정복자 헤르난 코르테스를 초청한 자리에서 초콜릿 음료를 대접했고, 초콜릿 음료에 매료된 코르테스는 카카오 콩을 스페인으로 가져가 그 곳에서 지금의 초콜릿에 중요한 성분 중 하나인 설탕을 추가하게 된다. 당시 스페인 사람들은 단맛을 좋아해 초콜릿 음료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설탕을 첨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는 초콜릿 음료의 새로운 맛에 탐닉하여 다른 유럽국가에는 비밀에 붙이도록 지시한다. 당시 카카오를 수확하던 수도승들에게도 비밀을 지킬 것을 맹세 받아 다른 유럽 국가에는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못하다가 1600년대 말이 되서야 유럽 전역을 거쳐 신대륙인 미국에 까지 상륙하게 된다.

악마를 치료해 주는 약 ‘초콜릿’

1760년대 매사추세츠주 동부에 위치한 밀턴에서 제임스 베이커와 존 헤너는 미국 최초의 초콜릿 공장을 열어 고형 초콜릿을 생산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초기의 제품들은 초콜릿이라고 하기 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설탕과 카카오 콩을 고운 가루로 만들 만한 기술이 없어서 쵸콜렛 입자가 굉장히 거칠었고 제조 역시도 단순히 코코아 액을 틀에 부어서 굳히기만 하는 정도였다.

미국 건국 당시 초대 정치인으로 헌법 제정자이기도 했던 벤자민 프랭클린은 초콜릿을 식품으로 승인했던 장본인으로 필라델피아에 있는 자신의 인쇄소에서 초콜릿을 판매하기까지 했으나 초콜릿이 가져오는 사회적 논란은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초콜릿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지 못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대중들은 생소한 음식인 초콜릿을 “악마를 치료해 주는 약(藥)”이라 여겼고, 의사들 또한 초콜릿을 먹으면 간(肝)에 악영향을 주어 건강을 해치게 될 거라 경고했다. 1773년 보스턴 차사건 이후 미국인들은 차를 마시는 것이 비애국적인 행위라 여겨 그 동안 차를 애용해 마시던 미국인들은 차츰 초콜릿 음료에 대한 선입견을 버려가기 시작한다.

또한 카카오 콩을 중남미와의 직접 교역을 통해 들여오게 되어 상대적으로 차 수입을 위해 영국에 세금을 지불 할 필요가 없게 되어 사회적인 명분까지 얻을 수 있게 된다.

골드러시 시대의 다크 초콜릿

미국이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초콜릿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코코아 하우스가 유행하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자연스럽게 정치 이야기를 나누면서 초콜릿 음료를 마시게 되었다. 그 후 1828년 반 호텐이 압착기를 발명하면서 코코아에서 버터(기름)를 짜내어 파우더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고, 1848년 드디어 마시는 초콜릿에 코코아 버터와 설탕을 더해 만드는 먹는 초콜릿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그 후 초콜릿 생산의 정점은 1850년~60년대의 골드러시 시대로 샌프란시스코의 기타르 가문과 기라델리 가문이 고향인 유럽에 있던 초콜릿 생산기술을 미국으로 들여와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생산해 내는 제품의 수량은 매우 작았으며 지금처럼 부드러운 밀크초콜릿이 아닌 다소 쓴 맛이 나는 다크초콜릿 이었다. 당시 미국에는 3개의 초콜릿 회사가 있었는데 이때까지도 다크초콜릿 만을 생산할 뿐이었다. 다크초콜릿은 카카오 콩에서 추출한 액상 초콜릿에 설탕 농도를 조절하며 만드는 제품으로 우유가 첨가되는 밀크초콜릿이 개발되는 1870년대가 되기 전까지는 초콜릿의 원형으로서 오랜 시간 사랑받게 된다.

출처 : 시사캐스트(http://www.sisacast.kr)

글 : 박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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