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박의 식음료이야기] 초콜릿 3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전해진 초콜릿

초콜릿 업계의 중심에 선 밀턴허쉬

매년 250억 개가 넘는 초콜릿을 생산하는 기라델리(Ghirardelli)초콜릿 부터 매주 22톤이 넘는 고급 초콜릿을 만드는 샤텐베네거 초콜릿까지 오늘날 수많은 초콜릿 생산업체들은 자신들만의 제조방식으로 초콜릿을 만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1900년대 초 프랭크마스(Frank C.Mars)의 초코바가 공전의 히트를 치던 당시 그는 다른 초콜릿 회사들 처럼 초콜릿을 100% 자체 생산하지 않고 밀턴허쉬(Milton S.Hershey)로부터 코팅용 초콜릿을 구입해서 초코바를 생산해 냈다.

프랭크마스 만큼이나 특이했던 것은 밀턴허쉬의 반응이었다. 그후 여러 초콜릿 회사들이 허쉬사의 초콜릿 재료를 구입하고자 하였고 밀턴허쉬는 우호적으로 거래에 응했다. 그 예로 나비스코 오레오 쿠키의 초콜릿 향료나 마스 스니커즈에 입혀진 초콜릿 등이 허쉬사의 초콜릿이었다. 이는 반드시 완제품이 아니더라도 초콜릿 판매가 늘수록 업계 내에서의 존재감도 커진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창업주 프랭크마스와 그의 아들 포레스트마스

마스사의 창업주인 프랭크마스(Frank C.Mars)와 그의 아들 포레스트마스(Forrest Mars)의 관계는 미묘한 애증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포레스트마스는 항상 일로 바쁜 아버지로 인해 고아 아닌 고아처럼 아버지를 그리워해야 했고, 그마저도 6살이 되던 해 부모님이 이혼하시게 되자 어머니를 따라서 캐나다로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인 프랭크마스는 초콜릿 회사의 창업주 이자 사장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아버지를 멀리해 오던 아들은 대학시절 아버지를 다시 만나 그의 사업을 도우려 했지만 또 다시 함께한 시간은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프랭크마스는 자신의 아들에게서 사업가의 기질을 발견하고 그를 회사의 임원으로 발탁했지만 완고한 성품을 가진 포레스트와는 매번 부딛 힐 수밖에 없었다. 1932년 프랭크마스는 결국 아들에게 5만 달러의 자금을 내 주면서 유럽에서 마스초콜릿 법인을 설립하여 운영해 볼 것을 권하게 된다. 이를 받아들인 포레스트마스는 1933년 영국에 정착하여 영국판 밀키웨이인 “마스초코바”로 큰 성공을 거두고 1939년까지 영국 세번째의 기업으로 성장하며 승승장구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난후 사업을 잠정 중단한 채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다.

포레스트마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허쉬사의 M&M’s

포레스트마스가 미국으로 돌아온 후 그의 아버지인 프랭크마스가 사망하게 되고 회사 또한 그가 물려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지만 가족들은 그가 회사를 이어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반대 속에서도 그는 신상품개발을 멈출 수 없었다. 그 당시 그가 했던 생각들은 기존의 틀을 깨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아직까진 냉장고와 에어컨이 발명되지 않았던 1930년대엔 대부분의 초콜릿 회사들에겐 여름시즌의 초콜릿 생산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 문제를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코팅된 초콜릿을 보고 “알초콜릿”이란 아이디어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일명 알초콜릿은 안에는 밀크초콜릿이 들어있는 색색의 코팅된 초콜릿이었다. 아이디어는 있었으나 초콜릿 가문인 가족들의 후원을 기대할 수 없었던 그는 허쉬초콜릿 사장의 아들인 브루스머리를 찾아가 알초콜릿의 생산을 도와줄 것을 부탁했고 브루스머리는 제품생산비용의 20%를 부담하고 허쉬사의 상호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초콜릿의 상품명은 “마스와 머리”라는 자신들의 이름을 따서 “M&M’s”라고 지어지게 된다.

포레스트마스는 알초콜릿을 다른 후발 주자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M&M’s임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했고 업계 최초로 식용잉크를 사용하여 초콜릿에 직접 글자를 새기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M&M’s 초콜릿은 오늘날 20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안겨주는 세계최고의 인기 초콜릿이 되었지만, 1930년대 처음 등장했을 떄만 해도 형편없는 판매율을 보였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초콜릿이 전쟁특수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면서 상황은 급반전 된다.

군용 휴대식량으로 개발된 허쉬사의 초코바 “D”

1937년 미 육군 장교가 허쉬초콜릿사를 찾아와서 취사가 불가능한 전쟁터에서 야전용 휴대식량으로 쓰일 초코바를 개발해줄 것을 요청해왔다. 당시 군용비상식량으로 맛없는 삶은 감자에 실증을 느껴왔던 군인들에게 최고의 식량이자 간식으로 환영받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 맞춰 휴대식량 초코바인 “D”가 탄생하게 된다. 오트밀가루, 파우더밀크, 비타민 등이 함유된 600칼로리의 D는 잘 녹지 않았기 때문에 더운 남태평양 주둔군 에게는 더 없이 이상적이었다.

이 제품은 코코아버터가 아닌 체온에 녹지 않는 지방을 사용해 섭씨54도까지는 잘 녹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달콤하고 부드러우며 고열량을 지닌 초코바는 세계 각국에 주둔해있던 미군들을 통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의 수많은 국가의 가난한 주민들에게 까지 알려지는 파급효과를 얻게 된다. 이후 거의 모든 초콜릿회사들이 군용으로 초콜릿을 납품하기 시작했고 그 인기와 수요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변함없이 이어지게 된다.

출처 : 시사캐스트(http://www.sisacast.kr)

글 : 박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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