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집단적‘금융 적개심’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KB국민은행 등 국내 18개 은행의 올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8조6천억 원이다.

지난해보다 2조1천억 원(32.1%)이 늘었다.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에서 대출을 못 받는 사람들이 찾아가는

저축은행 5곳(SBI·OK·페퍼·웰컴·한국투자저축은행)의 순이익은 4,880억 원으로, 전년 대비 47.5% 증가했다.

이들보다 더한 곳도 많다. 카카오뱅크는 1천159억 원을 기록해 이익이 무려 156.2% 급증했다.

증권사들도 신용거래융자로 8,500억 원의 이자수익을 냈다. 전년보다 230%나 폭증한 수치다.

개미투자자들에게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로 최대 연 11.8%를 받고 있어 가능했다.

주가 하락으로 담보가치가 떨어지면 고객이 손실 나건 말건 매정하게 반대매매로 팔아 치워 증권사가 손해 볼 일도 없다.

무정부 상태의 난세에 악덕 상인들이나 낼 법한, 이런 남는 장사가 또 있을까?

코로나19 탓으로 툭하면 거리두기를 남발하는 ‘K-방역’정책의 결과와

뜀박질을 멈추지않는 부동산값에 물가 오름세로 핍박한 국민경제와 대비돼 더 도드라져 보인다.

이들의 고리대금업 같은 수익은 어떻게 나오는 걸까?

사실상 정부 허가 방식의 ‘독과점 사업’이라 그렇다.

금융업과 달리 일반 기업들은 품질 좋은 제품을 제 가격에 팔면서도 한 자릿수 이상 마진을 내기 힘든 것은

자유시장 경쟁체제이기 때문이다.

금융업체의 엄청난 수익은 삼성전자 같은 혁신적인 기술·마케팅기법을 개발한 성과도 아니고,

벤처회사처럼 밤새워 가며 일한 결과물은 더욱 아니다. 개인 신용도가 낮으면 고금리 이자(가산금리)를

제멋대로 덧붙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맘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건 고수익을 쉽게 낼 수 있다.

‘허가 난 도둑’처럼 금융당국과 짬짜미로 생긴 결과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절박한 사람들의 고혈을 빼먹을 수 있도록 금융당국은 적당히 감독하고,

예견되는 금융사고에 대한 적절한 사전 대책을 세우지 않고 딴전 피우는 것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수수방관할 거면 차라리 돈장사를 아무나 할 수 있게 해주면 시장이 알아서 평정할 거다.

그러면 지금 같은 엉터리 대출서비스와 고리대금업자 같은 은행·증권사가 존재할 수가 없다.

이런 게 시장경쟁체제다. 그게 어렵다면 규제를 완화해 새로운 경쟁력을 가진 은행·증권사가

더 많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 이게 국민을 위한 정책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영끌·빚투를 막아야 한다며 내놓은 대책은 정반대다.

대출금지를 지도했다. 현금 쌓아 놓고 있는 재벌기업 일가와

아파트값 폭등으로 만들어진 졸부들만 이 땅에서 현금을 펑펑 쓰며 살라는 ‘특별정책’이나 마찬가지다.

금리 인상도 했다. 은행·증권사들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이자 요율을 합법적으로 더 높여 수익이 더 늘어나게 생겼다.

지금도 견디기 힘든 대출받은 사람들은 그만큼 더 호주머니 돈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금리를 0.25%씩 한 번만 올려도 국민 고혈 3조 원씩을 더 뽑아간다는 추산이다.

앞으로도 계속 더 금리를 올리겠다고 한다.

국민이 이렇게 힘든데도 내버려 두는 게 현 정부다.

금융 고통을 걱정하고, 어떤 대책을 세웠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아프가니스탄 난민 391명을 인도적으로 구했다며 흥분한 문재인 대통령의 목소리만 들린다.

더 심각한 국내의 ‘금융 난민’은 관심도 없고 언급도 없다.

국민들이 ‘인형장관’ ‘우산차관’ 욕을 왜 하는지 그 배경을 정부가 알 리 없다.

집 사려고 ‘영끌’하는 4050 세대와 주식 투자하기 위해 ‘빚투’하는 2030 세대가

호주머니 돈까지 은행· 증권사에 다 빼앗겼다고 집단적으로 느낄 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역사적으로 집단적 금융 적개심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구약성서에 나온 것처럼 통째로 태워 제사하는 의식인 홀로코스트.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로 유대인 600만 명이 희생됐다. 한 개인의 적개심만으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성을 잃은 집단적 적개심이 그 배경에 깔려 있다.

조심스럽지만 유대인의 고리대금업 역사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세금을 너무 많이 거둬가서 일어난 민란도 일종의 금융 적개심이다.

그만큼 고리대금업에 대한 집단적 적개심은 무섭다.

하지만 폭발하기 직전까지는 그 위력을 아무도 모른다.

이슬람 문화권 국가들이 돈에 이자를 붙여 빌려주는 것을 금지한 이유를

미개하다고 고개 돌려 넘기기보단 그 의미를 곱씹어 봐야 한다.

최로엡 loep@score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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